Page 228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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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여 세웠다면 그것은 고구려 광개토왕의 수군 침공에 대한 방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
므로 독산성 보적사는 그 이름 그대로 쌀을 쌓아 두었던 독산이었다는 것이다.
4. 조선시대의 충효교육 자료
1) 충효교육의 성지 독산성
오산시 지곶동에 위치한 독산성은 국난극복의 성지이다. 오산시청 홈페이지에 기록된 ‘독산
성’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독산성(禿山城)은 백제시대 쌓은 것으로 성 둘레가 1,100m이고 오산과 수원, 화성의 평야 한가운데
솟아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중인 선조 25년(1592) 전라도 순찰사 권율장군이 독산성에 주둔하며 왜군 수만 명을 무찌
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아군이 경기지역으로 북상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후에도 도성을 방어하는
큰 축을 담당하였다.
현재 성내에는 국가사적 140호인 세마대지(洗馬臺地)가 있는데 ‘화성지(華城誌)’에 의하면 왜군이 독
산성에 물이 부족함을 알고 성을 포위하자, 권율장군이 말을 산위로 끌고 가 쌀로 씻기는 시늉을 해
보여 왜군이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으며 이후 그곳을 세마대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전해
진다.
임진왜란 당시 순변사 권율은 관군(官軍)과 향병(鄕兵)을 이끌고 독산성에 진을 쳤다. 명나라
군사는 한성의 북쪽에서, 조선의 관군은 한성의 남쪽에서 협공하여 도성 한성 탈환에 나섰다.
독산성에 의지하여 재래식 무기인 활을 가지고도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을 물리쳤다. 그 일화도
유명한 세마(洗馬) 병법과 기습 작전으로 한겨울 추위에 떠는 왜군을 물리쳤다. 화성시 봉담면
의 ‘삼천병마동’은 권율장군의 군사가 왜병 3천명의 목을 벤 장소로 알려진다.
독산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권율은 행주산성으로 이동하여 전투를 벌였다. 행주산성 전투
에서 크게 이겨 왜군을 한양 도성에 가두어 두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임금은 독산성 전
투와 행주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도원수 권율을 일등공신으로 포상하였다. 그리고 독산성에
세마대를 지어 도원수 권율의 승전을 기렸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토성 독산성은 석성으로 개축
되었다. 정조임금의 명에 따라 대대적으로 수축되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
지만, 수도 한성을 지키기에 독산성이 매우 중요한 보루(堡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26 임종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