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0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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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자의 영정을 모신 궐리사



                        오산시 궐동에 궐리사(闕里祠)가 있다. 인(仁)을 주창한 孔子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그의 사상을 기리던 祠堂이자 書院이다.
                        궐리사 터는 최초 조선 중종(1506∼1544년) 때 문헌공 공서린(孔瑞麟)의 서재(書齋)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다. 경기도관찰사를 지낸 공서린 선생이 은행나무를 심은 후 북을 걸고 두드려 제
                      자들의 학업을 독려하던 강당으로 알려진다.
                        그 후 2백여 년이 지난 때에 조선 정조(1777~1800년)의 명으로 창건하였다. 정조가 사도세자

                      의 묘소인 화산릉에 행차하였을 때였다. 화산 남쪽인 오산 들판에 수많은 까마귀가 운집하는 것
                      을 기이하게 여겼다. 그래서 정조임금의 어가는 까마귀가 모인 오산의 장터인 오미까지 행차하

                      였다.
                        왕의 어가가 오산시 궐동에 이르렀을 때였다. 궐동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정조임금의 눈에 띄
                      었다. 왕이 신하들에게 은행나무의 사연을 물은 즉, 문헌공 공서린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강당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정조가 그 사연을 듣고 즉시 경기감사와 화성부사에게 명하였다.
                      은행나무가 있는 행단의 자리에 공자의 사당을 봉수하도록 지시하였다.
                        사당은 조선 정조 16년 10월에 착공하여 다음해인 1793년 6월 25일에 준공하였다. 공자의 사

                      당이 건립되자 궐리사로 이름 지었다. 공자의 탄생지인 중국 노나라 궐리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1900년, 오산의 유림들이 성묘(聖廟)를 중건하고 공자의 유상(遺像)을 봉안하였다. 1901년,

                      공자의 76세손 공재헌(孔在憲)이 중국에 건너가 성적도(聖蹟圖)를 들여왔다. 1974년, 공자의 성
                      적도는 경기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93년 7월 29일, 중국의 곡부 시장이 헌납한 공자의 석상(石像)이 봉송 안치되었다. 같은 해
                      10월 9일, 공부자성상봉수기공식(孔夫子聖像奉竪起工式)을 가졌다. 궐리사는 오산시의 유일한
                      書院으로서 당시 많은 유생들이 학문을 닦은 곳이다. 지금도 궐리사는 성균관 유도회 오산지부

                      의 역할을 맡고 있다. 해미다 여름과 겨울 방학기간 중에 오산시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인의
                      예지(仁義禮智)를 가르치는 명륜 학당이다.


                      3) 고등교육기관 향교



                        조선시대 유교문화 위에서 각 지방에 설립·운영된 고등교육기관이 향교(鄕校)이다. 국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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