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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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학자  임종삼이  진사왕릉으로  비정한  통봉.  독산성  남문에서  촬영.





                  2.  권율의  독산성전투와  세마대




                    독산성에는  독산성전투(세마전투)의  승전을  기념해  지은  장대가  있는데,  그  유명한
                  권율의  세마대이다.  선조25년(1592년)  12월에  시작된  오산시  지역의  ‘독산성전투’

                  와  화성시  봉담면  지역의  ‘삼천병마골전투’는  관군과  의병이  긴밀하게  연계해  이룬
                  승첩으로  행주대첩이  있게  되는  밑거름이  된  전투였다.
                    1592년(선조25년)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육로와  해로를  통해  한성을  점
                  령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침략하였다.  5월  정암진전투,  7월  이치전투,  10월  진주대
                  첩  등으로  번번이  좌절되고,  해상에서  이순신장군에게  연전연패  하면서  호남과  해

                  로를  통하여  한양에  진출한다는  본래의  계획이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독산성이  군사적  거점으로  이용된  것은  전쟁  발발  초기에  전라,  경상,  충청의  3도
                  근왕병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삼남의  병사들이  인심을  잃어  왜적을  만나면  모두  궤
                  산했으므로  의병이  일어났다.『선조수정실록』권25,  25년  6월조에  의하면  “의병은
                  왜적과  싸워  많은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인심과  나라의  운명은  오직  그들의  힘으

                  로  유지되었다.”  고  할  정도로  국란  극복의  큰  힘이  되었다.
                    왜군은  한양으로  진격할  때  용인으로  거쳐  갔다.  그러나  거점이  용인지역인지라
                  항시  피습  대상  지역으로  수원(오산)은  여러  번  약탈을  당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독
                  산성을  중심으로  삼남지역의  근왕병이  주둔하거나  북상하는  주요한  거점으로  삼게
                  되었다.

                    첫  번째로  수원성에  도착한  것은  1592년(선조25년)  6월  3일에  전라감사  이광의  3
                  도  근왕병들이었다.  6월  5일과  6일에  양일간에  걸쳐  전개된  용인전투에서  근왕병  5
                  만  명이  왜군  2천여  명에게  대패함으로서  삼남근왕병은  흩어지게  되고  조야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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