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5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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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살았는데, 현재는 개발이 진행되면서 자연마을은 거의 훼손된 상태이다.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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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디(마을)

                    내삼미 2동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로 현재 오산문헌서원이 있는 곳이다. 마을 지명의 연유                                          /  지명유래

                  는 잘 모른다고 하나, 일설에는 마을 앞에 예전에 수렁이 많아 나무로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징검다
                  리를 놓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소가 빠지면 못 나올 정도의 수렁이었다 하며,

                  그런 연유로 이곳은 농사도 짓지 않았다 한다.


                  ■ 죽미(마을)

                    내삼미 2동의 서쪽 죽미령고개 밑이며, 중미(中美) 혹은 죽밑, 죽밋이라고도 불렸다. 마을에 예전에

                  대나무가 많아 붙여졌다고 전한다. 1863년에 발간된 『대동지지』에 따르면 중미현(中彌峴)으로 나오고,
                  1831년에 발간된 『화성지』에 의하면 문시면에 죽담점(竹潭店)으로 나오며, 1914년 4월 1일 일제가 실

                  시한 행정구역 개편에서는 문시면 죽미(竹美)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죽미는 오래된 마을로 보인다.


                  ■ 대량굴(마을)

                    내삼미 2동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근처에 대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확실한
                  연유는 모른다고 한다. 한편 이곳으로 시집온 분이 있었는데 시댁의 형편이 어려움을 알고 친정에서

                  식량을 대주었다(대량, 貸糧)고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는 유래도 전하고 있다.


                  ■ 능곡(마을)

                    능골이라고도 하며 내삼미 2동의 가장 위쪽 마을이다. 여러 가지 설이 전한다. 원래 누구의 묘인지

                  는 모르나 능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일설에는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의 능산지

                  역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옛날에 이 마을에 능참봉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여기에서 능곡과 능골은 같은 의미이며 능곡(陵谷)의 곡이 골 즉 고을, 마을을 뜻하는 것
                  이므로 능골은 능곡을 우리말화한 명칭인 것이다. 대량굴과 능골마을을 일컫는다.



                  ■ 새터(마을)

                    내삼미 2동의 남쪽 마을로 새로 마을이 형성된 데서 붙여진 이름이며, 이 마을이 가장 큰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가장 큰 마을이 되었다.



                  ■ 절동네(마을)

                    검디의 또 다른 마을 이름으로 현재는 오산문헌서원이 있는 곳 근처에 예전에 절이 있었다 하여 붙
                  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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