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1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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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께(들) 219
마을의 서남쪽 신영효자정려문(申榮孝子旌閭門)이 있던 곳의 들판이다. 정려문이 있는 마을께라는 생활환경
뜻이다. 신영(1816년, 순조16~1891, 고종28)에게 내려진 신영효자정려문은 현재는 훼철되어 없어졌
다. 신영은 조선시대 세종(世宗)때 좌의정을 지낸 문희공(文僖公) 개(槩)의 후손으로 부친은 호조참판 / 지명유래
으로 증직된 의방(義防)이다. 공의 행적이 알려지지 않고 있었으나, 효심이 지극하여 효자정문(孝子
旌文)을 내려받아 효자문이 오산시 금암동에 있었다. 그러나 후손들과 지역주민들의 무지와 무관심
으로 효자문은 사라져버렸고 2013년 금암향우회에서 발간한 『2013 내고향 금암동』에 효자문 사진이
발견되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효자문 현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孝子贈資憲大夫戶曹判書兼知義
禁府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申榮之門>. 공이 사후에 자헌대부 호조판서로 증직되었다는 내용이다.
■ 도둑재고개(고개)
마을의 북서쪽 서랑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예전에는 가끔 도둑(산적)이 나타나 붙여진 이름이다.
■ 윗우물(우물)
마을의 위에 있는 우물이다.
■ 아랫물(우물)
마을의 아래쪽(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우물이다.
■ 감줏물(우물)
가물어도 물이 철철 넘치고 물맛이 감주처럼 달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말우물(우물)
말 무덤 아래쪽에 있는 우물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 물탕(약수)
여계산 중턱에 있는 샘물로 근처에 청량굴이 있어 여름에 시원하며,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낼 때에
는 이 약수를 이용하였으며, 아낙네들이 득남과 순산을 기원하는 곳이다.
■ 산신제터(터)
큰말 뒤쪽의 여계산 중턱이며 마을의 산신제를 지내던 터이다.
■ 송각시고개(고개)
지곶동·세교동·금암동 경계의 고개로 예전에는 서낭당이 있었으며 연유는 모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