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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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옛날 임진왜란 때 아기가 숨어 있는 바위를 톱으로
잘라 애기를 죽인 바위로 지금도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 바위에는 애
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금암동은 예전에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길지로 보였던 모양이다. 임진
왜란 때에 왜군이 금암동에 들어와 약탈을 하였다. 이때 왜장은 풍수에 밝은 사람
이었는지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더니 큰 인물이 태어날 지형임을 알고 부하들을 시
켜 어린 사내아기와 임산부를 모두 죽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을을 뒤져 마구잡이로
살생을 저질렀다. 그런 와중에 마을에 한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마침 아들이었다.
그러나 기뻐할 사이도 없이 아기를 살려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래서 부인은 아
기를 감추고 자신이 희생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마음을 굳히고는 일부러 임산부처럼
배에 바가지를 넣고 마을을 활보하였다. 드디어 마을 입구에서 왜병들과 만나게 되
었는데 왜장은 이 부인이 이미 어린애를 낳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고 부인에게
아기가 있는 곳을 물었으나 말하지 않자 부인의 배를 칼로 자르게 하였다. 짐작대
로 부인의 배에는 엎어 놓은 바가지가 나오자 부인을 살해했다. 그리고는 마을을
샅샅이 뒤지게 했으나 아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기 엄마가 살해된 지
이틀이 지나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산에서 들렸다. 왜병들은 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큰 바위 밑에서 들려 왜병들이 바위를 치우려 했으나 바위는 움
직이지 않았다. 왜장은 부하들을 시켜 바위를 톱으로 자르라고 하였다. 톱으로 바위
를 자르기 시작하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얼마 후 바위는 두
동강이 났고 그 안에서 선혈이 낭자한 아기의 시체가 나왔다. 결국 왜병들은 마을
의 아기들과 임산부를 모두 살해하고 떠났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애기바위
의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왜군의 잔혹성을 말한다.
애기바위. 애기바위 옆 사람과 비교하면 바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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