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P. 111
*오산시의 지명유래
우리가 살고 있는 오산시의 면적은 2018년 5월 31일 기준 42.73㎢이다. 그중 농
경지는10.50㎢ (24.6%)이며 임야는 11.42㎢ (26.7%), 기타 20.81㎢ (48.7%), 도시
계획구역(전역) 42.73㎢이다. 그리고 행정구역은 6동 313통 2,159반의 조직으로,
즉 6개의 행정동과 24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타 지자체에 비
하면 작은 도시이나 그러함에도 오산은 시세에 비하여 다양한 문화시설과 사통팔달
발달한 교통 등 살기 편리한 수도권에 위치한 작지만 강한 도시이다. 이 오산의 지
명에도 이러한 다양함과 정서가 담겨 있다. 오산의 지명 유래에 대해 알아보자.
1. 오산(烏山)의 지명 유래
오산(烏山)이라는 지명이 문헌상에서 확인되는 것은 고려 원종 1년(1260년) 때가
처음으로서,『고려사』에 기록된 “속리대가 을유년에 오산(烏山)에 퇴둔하였다.”는
기록으로 고려왕과 몽골 장수 속리대가 개경과 강화도를 오가면서 몽장 속리대가
주둔하였다는 내용으로 이 고려 원종 때의 오산(烏山)이 현재 우리가 사는 오산(烏
山)인지는 확정할 순 없지만, 『조선태종실록』 태종 3년(1403년) 기록에 의하면,
왕이 “수원부 오산(烏山)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선 적어도 1403년에
는 현 오산시(烏山市)의 오산(烏山)이라는 지명을 이 문헌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다. 현재 오산시(烏山市)는 오산동(烏山洞)의 오산시(烏山市) 전역 확대 지명이다.
오산(烏山)은 까마귀가 많았고, 200m이하의 구릉이지만 오산시(烏山市)의 70%가
산으로 구성된 곳이다. 결국 까마귀가 많고 산이 많아 오산(烏山)이라는 지명으로
지어진 곳이다. 까마귀는 다음과 같은 상징성을 갖고 있는데, 오산(烏山)의 정체성
과도 부합한다. 까마귀와 산의 상징성을 추출하여, 신성(神誠), 충효(忠孝), 지혜(智
慧), 용맹(勇猛)의 도시로 상징성을 확정하고 있다. 한때 까마귀가 흉조로 인식되어
조선 후기 이후에 한때는 鰲山오산, 梧山오산, 烏梅오매, 菟峴토현, 菟汎토범, 五山
오산, 五美오미, 五味오미 등으로 불린 적도 있다. 오산(烏山)은 1941년 10월 1일
수원군 성호면으로 불리다가 수원군 오산면이 되었고, 1949년 8월에는 화성군 오
산면(烏山面)이 되었으며, 1960년 1월에 화성군 오산읍(烏山邑)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오산시(烏山市)로 승격되고 시 당국은 시 승격 당시의 명칭을
오산시(烏山市)로 명명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