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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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안쪽에  있으니  ‘안삼미’,  즉  내(內)삼미가  되었으며  외삼미는  바깥쪽에  있어

                  외(外)삼미가  되었다고  전한다.  1789년(정조13년)까지는  삼미면  또는  삼미곡면으로
                  있어  삼미가  아주  오랜  옛날에는  하나의  면(面)이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미(마을)



                    삼미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것  다섯  가지가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
                  로  현재의  오산시  전체를  지칭한  것이라  하겠다.  삼미의  3가지  아름다움과  함께  원

                  동(園洞)에는  아름다운  동산에  꽃밭이  아름답고,  초평에는  석양에  아름다운  물을  가
                  리켜  부른  것이라고  전한다.  예전에  원동(지금의  대원동)  일대에는  동산에  꽃이  만
                  발하여  보기가  좋았고,  초평으로는  지금의  오산천에  배가  들어올  정도로  물아  많아
                  석양에  바라보는  초평  쪽  오산천의  물이  무척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내삼미(內三美)  2동




                    내삼미  1동과  마찬가지로  삼미였으나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철로를  중심으로
                  서쪽이  내삼미  2동으로  된  곳이며,  능골,  검디,  죽미,  대량굴  등이  이  마을에  속한
                  다.



                  검디(마을)




                    내삼미  2동  중에서  가장  남쪽의  마을로  현재  문헌서원이  있는  마을이다.


                  죽미(마을)




                    내삼미  2동의  서쪽  마을  죽미령  고개  밑이며  중미(中美)  혹은  죽밑·죽밋이라고도
                  불리었다.  마을에  대나무가  많아  붙여졌다고도  하며,  1863년에  발간된  『대동지
                  지』에  따르면  중미현(中彌峴)으로  나오고,  1831년에  발간된  『화성지』에  의하면
                  문시면에  죽담점(竹潭店)으로  나오며,  또한  1914년  4월  1일  일제가  실시한  행정구
                  역  개편에서는  문시면  죽미(竹美)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죽미는  오래된  마을로  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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