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6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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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1392년(태조1년)에 개국원종공신의 녹권을 하사 받았다. 공의 묘소는 오산시 내
삼미동 산 21-3 필봉산(당시는 봉화산이라 함) 남쪽 기슭에 있으며 매년 음력 10
월 보름이면 시향을 지내고 있다.
★금암동(錦岩洞)
금암동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899년(광무3년)에 발간된 『수원군읍지』에
문시면, 묵암동(墨巖洞), 그리고 다시 1914년 4월 1일 일제가 실시한 행정구역 개
편시 문시면 검암동(黔岩洞)으로 나온다. 이것은 금바위 또는 검바위로 불렸으며 바
위와 연관이 많은 마을로 바위가 많고 바위가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마
을 한 가운데 잘 생긴 바위가 있어 금바위라고 불러 왔는데 이를 한문으로 쓰면서
금암(錦岩)이라고 고친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우리말의 ‘감’의 뜻은 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이 ‘감’이 ‘검’과 ‘금’으로 바뀌어 쓰인 듯 하다. 금바위나 검바
위도 큰 바위를 뜻하는 의미에서 쓰여졌으며 한자로 표기하면서 금암동(錦岩洞)이
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금암동은 1915년 1월 29일 수원군 성호면 금암리가 되었
으며, 1988년 12월 2일 경기도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금암동고인돌군이 있는 마
을로서 바위와 관련이 많은 마을이다.
할머니바위와 할아버지바위(바위)
이 금암동 고인돌공원에는 할머니바위와 할아버지바위라고 불리는 두 개의 큰 바
위가 있다. 이 할머니바위와 할아버지바위는 금암동고인돌들의 모암(母岩)이다. 이
곳 고인돌 덮개돌의 재료를 공급해준 공급 바위들 중의 일부인 것이다. 이 할머니
바위와 할아버지바위가 마치 여럿 자식들을 두었고, 그 자식들을 분가시켜 대가족
을 이룬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모암인 할머니바위와 할아버지바위
에서 분가한 고인돌들이 인근 지역으로 퍼져 나가 모든 금암동고인돌군을 형성하고
있다. 미처 고인돌로 살림을 차리지 못한 손자, 손녀격의 바위들도 할머니바위와 할
아버지바위 곁에 앉아 있는 모양새이다. 조부모가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아름다운
여생을 맞이하는 듯 정겹게 보인다. 이러한 모습으로 수천 년을 지내왔으며, 그래서
이 고인돌공원에만 가면 할머니바위와 할아버지바위 가족처럼 화목한 삶을 살게 된
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곳이 화목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들의 기도처가 된 이유
이다. 할머니바위와 할아버지바위는 예로부터 금암동의 수호신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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