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2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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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당굿과 이용우 선생 그리고 경기재인청  - 설치장소 / 부산동




                        경기도당굿(京畿都堂굿)은 1990년 10월 10일에 지정된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목적으로 매년 혹은 그 이상의 해를 거르며 정월 연초나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지던 것으로 호남지방의 당산굿이나 동해안의 별신굿과 함께 세습무가 맡아 행하는 대표
                       적인 마을굿이다. 경기도당굿은 무악을 연주하는 화랑, 줄타기·물구나무서기 등의 곡예를 하

                       면서도 무악을 연주하는 재인, 예능인이며 무악을 연주하는 광대를 포함하고 있으며 축제분위
                       기를 돋우는 다양한 연희 종목을 보유했으나, 현재는 광대 소리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의 승무, 태평무, 도살푸리춤, 줄타기 등의 민간 무용과 전통연희의 소리와 춤사위가 모
                       두 경기도당굿에서 연유한다. 즉 한국전통예술의 모태가 되는 것이 경기도당굿이다. 이 경기
                       도당굿의 대표적 연행자인 이용우(李龍雨-1899~1987)선생은 옛 수원군 성호면 부산리(오산

                       시 부산동) 출신의 이름 높은 화랭이였다. 이용우는 8도 도대방인 이종하(李鍾河)의 장자로 태
                       어났으며, 그의 증조부 이광달, 조부 이규인도 8도 도대방이였고 일제강점기 때 오산에서 수
                       집한 오산12제차를 제공한 이종만(李鍾萬)의 조카이기도 하다. 선생은 8세 무렵부터 판소리를

                       익혀 서울 단성사와 지방을 순회하며 공연을 하기도 하였는데, 29세 때 목이 부러져 끝내 판
                       소리를 포기하고 무업을 다시 계승하였다. 경기재인청이 폐청된 후에도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
                       었으며, 경기도당굿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1980년에 부천의 조한춘을 만나 경기도당

                       굿 활성화를 시도했고, 1982년에는 국립극장에서 오수복(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기능보유자)
                       과 함께 공연하기도 하였다. 이용우 선생은 경기도당굿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인 1987

                       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기재인청은 춤과 노래, 재담, 놀이 등을 연행했던 예인들
                       을 총괄하던 단체로 옛 수원시 성호면 부산리 웃말(오산시 부산동)에 위치하였으며 이종하의
                       집에서 보유한 『경기도 창제도청안』1책, 『경기도 재인청 선생안』 1책, 『경기도 창재청』 2책이

                       있어서, 최소 1784년부터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고 1920년대 일제가 강제로 폐청시킬 때까지
                       130여 년에 걸쳐 재인청이라는 무인의 제도가 존속했음을 알 수 있으며, 폐청 당시에도 회원

                       이 4만 명이나 되는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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