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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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사면을 따라 밀집 분포하여 취락단위 별로 공동묘역을 조영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묘광의 굴착방식에 따라 일단광식과 이단광식으로 나뉘며, 매장주체부는 목관의 유무에 따
                       라 목관묘와 직장묘로 세분된다. 유물은 피장자의 발치쪽 혹은 머리쪽에 유물을 부장한 예가
                       있으며, 요갱과 편방을 만들어 이곳에 유물을 부장한 예도 다수 확인된다.

                        유물은 백자발·백자접시·백자종자 등이 함께 출토되며, 일부 백자병·흑유호 등도 출토
                       된다. 청동기물로는 청동숟가락·청동합·청동병·청동시저·청동거울 등이 있으며, 철제교
                       구·철제가위·동전 등의 조합으로 유물을 부장하였다. 이밖에 세교지구에서 확인된 조선시

                       대 유구는 건물지와 수혈유구, 구상유구 등이 있으며 생산유구로는 기와가마와 숯가마 등이
                       함께 조사되었다.








                       Ⅲ. 조사성과





                        오산 세교 택지개발부지는 오산시 금암동·궐동·수청동·누읍동·벌읍동·탑동·두곡
                       동·청학동·가수동 등 9개 동 일원에서 택지개발사업을 진행했던 지역이다. 이곳은 오산천

                       이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70m 내외의 야트막한 구릉성 산지가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
                       어 있어 선사시대 이래 인간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던 지역으로, 개발
                       전 문화재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2,483기의 유구와 84,498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양적·질적으로 매우 다양
                       한 형태의 매장문화재가 확인된 바 있다. 조사내용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으며, 조사내용을 토
                       대로 발굴조사 성과를 살펴보면서 본고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세교지구에서 가장 이른 시기 유적은 신석기시대로 확인되나, 구체적인 문화상은 아직까지
                       희미한 편이다. 세교 1지구에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수혈유구가 조사되었으나,

                       세부적인 특징은 파악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인근 가장동에서 신석기시대  주거지와 수
                       혈유구가 조사된 사례를 통해 오산천을 중심으로 신석기시대 취락의 존재 가능성은 매우 높다
                       고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세교지구 일대는 본격적으로 삶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주거지와 수




                       30  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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