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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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신 자료의 등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국 고고학상에서 중서부지역 일대는 기원전후
~300년까지 공백기로 관련 고고학 자료가 전무한 실정이었다. 그러나 2011년 세교 2지구 5지
점에서 (주구)토광묘가 조사되었고 출토유물을 통해 2세기 중반 전후의 문화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유개대부호와 원저발이 함께 공반되는 유물조합상의 특징으로 철
검과 철모, 철촉 등의 철기류가 함께 부장되었다(충청문화재연구원 2011·강지원 2012).
<그림 12> 1지구 4지점 25호 관·곽토광묘
둘째는 묘제의 변화상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세교지구에서 조사된
총 378기의 분묘는 Ⅰ단계 단순토광묘단계에서 Ⅱ단계 주구토광묘단계 그리고 Ⅲ단계인 관·
곽토광묘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Ⅰ단계는 2세기 중반 전후~2세기 말까지로 보고 있다. 이
시기는 앞서 언급했듯이 유물부장에 있어 유개대부호와 원저발이라는 표지적인 유물이 출토
되는 시기이며, 철기유물 중에서는 철검의 출토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Ⅱ단계는 주구토광묘단계로 2세기 말~4세기 중반까지이다. 오산세교 지구의 중심묘제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특징적인 모습은 무덤을 조영하는 양상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단
위별 묘역이 조성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무덤을 조성하는 전통이 일반화되었음을 추측
오산 세교택지개발 지구 내 유적 발굴조사 성과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