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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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처마 끝에 잡상 2개가 확인되는데, 1977년에 촬영된 세마대 사진에는 처마가 아닌 용마
루 위로 옮겨져 있다. 그리고 1979년 당시 세마대 현황 도면과 1980년대 촬영된 세마대 사진
에는 잡상이 확인되지 않는다.
잡상이 맨 처음 확인된 사진인 1958년인 것을 감안하면 잡상은 세마대가 복원될 당시에 함
께 설치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용마루로 옮겨진 잡상은 정상적인 보수를 통해서 옮겨진 것
은 아닐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1957년부터 1978년 사이에 독산성 보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고 3년 뒤의 보수 현황 도면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임시적으로
용마루로 옮겨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잡상이 1979년 현황 도면에 표시 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보수에서 제외 된 것이 아니라 1976년 ~ 1979년 사이에 도난 등으로 없어진 것으로 추
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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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5> 1958년 세마대 사진(①세마대 전경, ②잡상, ③세마의식)
단청의 경우도 1958년 사진에는 ‘세마의식’이 그려져 있었으나 그 이후 1969년에 촬영된 사
진과 1977년 사진에서는 1958년에 있던 ‘세마의식’ 그림이 확인 되지 않는다. 또한 1976년에
촬영된 사진의 경우 세마대 내부 종보에 태극기도 확인되는데 이후 1983년과 1988년에 촬영
된 사진을 보면 종보에 태극기가 없다. 세마대의 단청은 1979년과 이후 1990년에 다시 하였는
데, 보수 기록과 사진이 촬영된 연도를 볼 때 1979년 보수 때 태극기를 지운 것으로 추정된다.
태극기를 지운 연유에 대해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독산성의 보수는 문화재청의 설계검토를
받아 진행하였음으로 설계검토에 따라 태극기를 지우고 지금과 같은 문양으로 바꾼 것으로 추
48 이용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