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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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백성들을 위한 축성공사에 백성들이 병 들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철저하게 가지고 있었
다. 19)
화성 축성 시에 가장 먼저 척서단을 하사한 것은 1794년 6월 25일이다. 20)
정조는 척서단 4천정을 화성 축성의 현장으로 내려주며 아래와 같이 하교하였다.
“불볕더위가 이 같은데 城役處에서 공역을 감독하고 공역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끙끙대
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밤낮으로 떠오르는 일념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 이러한데 어
떻게 밥맛이 달고 잠자리가 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속이 타는 자의
가슴을 축여 주고 더위 먹은 자의 열을 식혀 주는 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따로이 한 처방을
연구해 내어 새로 조제하여 내려 보내니, 匠手·募軍 등에게 나누어 주어서 속이 타거나 더위
를 먹은 증세에 1정 또는 반정을 정화수에 타서 마시도록 하라. 이 밖의 구료할 처방도 각별히
유의하여 구중궁궐에서의 염려를 덜어 주도록 하라.” 21)
화성 축성에 참여한 기술자와 인부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정조는 단순히 척
서단만을 내려 보낸 것이 아니라 처방에 대한 주의와 배포 지침도 함께 지시하였다. 당시 정조
가 하사한 4,000정의 척서단은 감독, 패장, 원역, 모집한 일꾼들에게 등급을 매겨 나누어 주
었다. 감독 14명과 경·부 패장 87명에게는 각 2정씩, 경·부 서리 33명, 석수와 조수 합하여
871명, 목수 344명, 대장장이와 조수 모두 합하여 267명, 벽돌장이 62명, 수레장이 15명, 조
각장이 37명, 나막신장이 7명, 기톱장이 12명, 걸톱장이 8명, 큰끌톱장이 50명, 작은끌톱장이
18명, 배기술자 40명, 안자장이 2명, 화공 5명, 부계장이 2명, 수레꾼 75명, 소치기 32명, 짐
꾼 582명, 허드레꾼 1,132 명에게 각각 1정씩을 나누어 주고 나머지 240정은 뒤에 오는 기술
자들에게 주기로 하여 보관하였다. 22)
당시 정조로부터 척서단을 하사받은 기술자와 인부들은 모두가 손을 모아 감축하고 기뻐서
말을 이루지 못하였다. 더불어 척서단 외에 임시로 설치된 藥局에 척서단과 효능이 유사한 약
19) 『正祖實錄』卷40, 18年 7月 辛卯.
20) 『華城城役儀軌』卷首, 時日, 各項日子.
21) 『正祖實錄』卷40, 18年 6月 癸未.
22) 『華城城役儀軌』卷2, 頒賜, 甲寅年 6月 25日.
96 김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