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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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비용이 734냥 3푼이 들었다.       15)


                         환자들에 대한 임금 보전 비용 외에 화성유수부에서 축성 과정 중에 다친 환자에게 다양한
                        약재를 제조하여 치료제로 사용하였다. 당시 사용된 藥物은 淸心元 500환, 蘇合丸 4,000환,
                        廣濟丸 3,000환, 辰砂益元散 420첩, 益元散3,978첩이 사용되었다. 이 약물에 대한 비용은

                        525냥 9전 6푼이었다. 더불어 당재, 향재 등이 사용되었으며 이 비용은 126냥 9전 4푼으로 도
                        합 652냥 9전이 약물 값으로 사용되었다.          16)







                        Ⅲ. 화성축성시 민본적 의료행위





                         정조는 수원신읍치 이전과 화성축성에 참여한 관원 및 인부들을 위한 의료행위를 실천하였
                                                                                  17)
                        다. 이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이 곧 나라의 병을 고치는 일과 같다” 는 정조의 기본적인 의
                        료철학의 바탕일 뿐만 아니라 개혁정치의 기반이 될 화성을 축성하는 이들에 대한 민본주의적
                        배려였다.
                         1789년 10월 현륭원 공역을 완공하고 수원으로 사도세자의 神轝를 운반하는 轝士들을 위하

                        여 정조는 한기를 막는 新方濟衆丹을 만들어 거사들에게 지급하였다. 비록 자신의 生父 사도
                        세자를 위한 현륭원 천봉이었지만 정조의 이와 같은 행위로 인하여 백여 리 길에 이르는 화산
                        으로의 천원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18)

                         이후 정조는 화성을 축성과 관련하여 본격적인 민본적 의료행위를 실천하였다. 즉 더위에
                        지친 인부들을 위해 滌署丹을 지급한 것에 대하여 그들의 건강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공사를
                        중지시켰다. 화성 축성을 시작한 1794년은 정조대 이래로 가장 심한 더위가 있어 성곽 축조

                        에 매우 어려움이 있었다. 정조는 이에 축성 공사 현장 중 채석과 기와를 굽는 현장은 특히 뙤
                        약볕 가운데 서있게 되므로 부역하는 일은 서늘한 기운이 생길 때까지 멈추도록 하였다. 즉 정




                        15) 『華城城役儀軌』권6, 實入2.
                        16) 『華城城役儀軌』卷6, 實入2, 藥物.
                        17) 『弘齋全書』卷119, 群書標記 壽民妙詮.
                        18) 『正祖實錄』卷28, 13年 10月 戊辰.


                                                                         정조대 화성유수부의 의료기관 고찰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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