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2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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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관들이 의료행위를 하던 기존의 지방행정 통치에 없었던 새로운 제도의 실천이었다. 정조의
                       이와 같은 의료기관 설치는 화성유수부가 국왕이 임어하고 있는 한성부와 같은 도시위상을 같

                       게 하고자 하는 출발점이자 전국 모든 도시에 의료기관을 설립하고자 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
                       이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정조는 화성 축성과정에 참여한 기술자와 인부들을 위하여 임시 약국을 설치하고

                       이들을 치료하였다. 치료 외에 다양한 약재를 하사함으로써 국왕의 백성 사랑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화성유수부 설치와 화성축성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졌으나 실

                       제 화성유수부내의 의료기관 설치와 의료행위에 대한 연구는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화성에
                       대한 연구가 주로 건축사적 내용과 정조의 화성건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도 그리고 화성

                       내에 주둔하고 있던 장용영외영에 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오산시는 정조시대 화성유수부에 포함된 지역으로 수원시, 화성시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정조시대 화성유수부의 의료기관 및 의료 제도의 활성화에 따른 다양한 정책과

                       제도 시행 역시 공유된 역사이다. 오산시는 생존수영과 음악 교육 등을 정착화하며 21세기 전
                       국 최고의 교육도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의료 기관의 잔정성을 통해 건강한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이에 화성유수부내에 의료기관의 설치와 유지와 정조가 화성을 축성하

                       는 과정에서 의료지원을 통해 민심과 함께 하였는지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Ⅱ. 화성유수부 승격과 의료기관 설치





                        1793년(정조 17) 1월 정조는 水原都護府를 華城留守府로 승격시키면서 화성유수부에 壯勇

                       營外營을 신설하였다. 화성유수부의 승격은 1년 뒤에 있을 화성축조를 위한 사전 준비작업이
                       었다. 화성 축성은 왕권을 강화하여 민생안정을 추구하고자 하는 정조의 장기적인 정국운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정조는 화성유수부를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배후
                       도시로 만들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화성유수부 승격과 더불어 장용외영을 신설한 것이다.
                        정조는 도성 외의 지방에 거주하는 빈민들의 홍역 치료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

                       다. 이는 단순히 전염병인 홍역을 치료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백성들을 사랑하는 은혜가 빈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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