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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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정조시대 개혁정책의 주요 핵심은 위민을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왕권강화를 추구하는 것이
었다. 정조는 이러한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民의 재산을 만들고 人才를 무성하게 하며 軍
事를 다스리며 財政을 풍족하게 해야 한다”는 요지의 更張大誥를 발표하였다.
정조는 세손 시절 사도세자의 죽음을 극복하고 조선의 국왕으로 등극한 인물로 어린 시절부
터 조정의 정치원리를 몸으로 터득한 이였다. 따라서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 고도의 정치 기법
을 이용하여 당쟁을 극복하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정조의 왕권강화 정책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규장각을 통한 문화융성, 抄啓文臣 활
성화를 통한 인재양성, 辛亥通共을 통한 경제활성화, 서얼허통. 欽恤典則. 字恤典則 등 인본정
책을 통해 王權과 臣權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정조의 이와 같은 민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경장정책과 함께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의료정책이었다. 정조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은 나라의 병을 고치는 것과 똑같은 원리라는
인식하에 백성들이 홍역과 각종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의료정책을 추진하
였다. 스스로 『壽民妙詮』이란 의학서를 저술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과 內醫院 首醫인 강명길에게 의학서를 편찬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
다. 물론 정조시대 이전 모든 국왕들이 백성들의 건강을 위한 의료정책을 추진하였지만 국왕
으로부터 신하들에 이르기까지 의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시대는 흔하지 않았다.
특히 정조의 지우를 받고 있던 이덕무는 조선의 선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율곡 이이
의 『聖學輯要』, 반계 유형원의 『磻溪隧錄』 그리고 허준의 『東醫寶鑑』을 선정함으로써 당대 선비
들 대부분이 동의보감을 읽음으로써 의료행위가 지니고 있는 민본정신을 체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정조는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는 4대 개혁정책의 완수를 위하여 새로운
친위도시 건설이 필요하였다. 1789년 자신의 생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읍치로 천봉하고
기존의 수원부읍치를 팔달산 동쪽의 들판으로 이전하면서 신도시 수원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1793년 1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하면서 정조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부분에
서 화성을 육성하여 조선에서 가장 큰 도시로 만들고자 하였다. 이는 앞서의 내용과 같이 화성
을 기반으로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개혁정치를 하고자 함이었다.
당연히 정조는 화성의 백성과 화성에 주둔하고 있는 5,000여명의 장용외영 군사들의 건강
을 위한 의료기관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이는 도성에만 의료기관을 설치하고 지방에는 가정
정조대 화성유수부의 의료기관 고찰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