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오산문화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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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VOL. 64  osan culture
































                                곶산(串山)에 조성한 사도세자의 묘

                                였다. 사창(私倉)은 국가가 관리하는 관창(官倉)의 하급 창고였다.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양감

                                면 사창초등학교가 그 자리이다.
                                안성천과 삽교천이 합수하는 아산만에 고려시대의 조창 하양창(河糧倉)이 있었다. 경기 남부
                                와 충청 지방에 거둔 조세를 보관하던 고려 제1의 관창이었다. 하양창에는 쌀 1천 석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15척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양감면의 양(糧)과 사창리의 창(倉)에 하양창(河

                                糧倉)의 의미가 담겨있다.


                                3) 고려와 조선의 조운제도(漕運制度)
                                조운이란 조세로 거둔 쌀과 특산물 등을 배(漕)를 이용하여 중앙(도성)의 경창(京倉)으로 운

                                송(運送)하는 것을 말한다. 각 지방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 그 지역의 사창(司倉)에 세곡을 저
                                장하였다가 주로 농한기에 운반하였다. 강(江)을 이용할 경우에는 수운(水運), 바다(海)를 이
                                용할 경우에는 해운(海運)이라 하였다. 조운제도가 기록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려, 조선시대이
                                지만 학계에서는 삼국시대에도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시대에는 성종 11년(992년)에 조운제도가 시작되었다. 한반도의 서남 연해지방과 한강 연
                                변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60여 곳의 군현(郡縣)에 포(浦)를 설치하면서 활성화되었다. 이
                                후 현종 때 충주·원주·나주·영광·영암 등 전국에 12개 조창(漕倉)을 설치하였고, 이곳에 보
                                관되어 있던 현물은 이듬해 2~5월 사이에 고려의 수도 개경(開京) 교외의 동강(東江)과 서강

                                (西江)으로 운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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