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오산문화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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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VOL. 61  osan culture









                자주국방의 이상을 실현할 문무겸전의 교육터

                1789년 가을,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화산으로 이장했다.
                이때 정조는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와 박제가, 장용영 초관 백동수
                에게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라는 명을 내렸다. 군사교육의 표준
                화와 대중화를 위한 이 사업은 1759년 훈련도감에서 <무예신보>를

                펴낸 사도세자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독산성은 오산의 역사와 함께했다. 그렇다면 군사적 요새로
                서의 역할이 사라진 우리 시대에 독산성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
                해야할까?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독산성을 진로를 모색하는 청소년

                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독산성은 국왕과 재상과 장
                군이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현장이며, 주위에 둔전을 개척하여
                자급자족의 이상을 실현했던 역사의 무대이다. 아울러 무사들이
                무예를 연마했던 상무의 성지라는 사실도 기억해야할 것이다. 이러

                한 역사는 오산시가 독산성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놓
                치지 말아야할 정신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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