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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 능지기를 보고 “당신은 내일 죽을상이요”하니 능지기가 하도 기가 막혀 스님을 붙잡고 늘어지며
                  “내가 죽을 줄을 아니 분명 살아날 방도도 알 것이니 제발 알려주시오”라고 사정하니 한참을 망설이

                  던 스님이 “그러면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능 앞에 엎드려만 있어야 하네.”라고 이르고는 유
                  유히 걸어갔다.

                    다음날 능지기는 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능 앞에 엎드려 있었다. 효심이 지극한 정조대왕은 생부
                  의 묘인 화산을 자주 찾았는데 그날도 화산에 나섰다가 비를 만나게 되어 수원 행궁에서 유하게 되었

                  으나 비가 오니 아버지의 묘가 걱정이 되었다. 임금은 신하를 불러 “당장 능에 가 보아라. 만약 능지
                  기가 집에 있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와야 하느니라” 추상같은 임금의 명을 받은 신하는 능지기

                  의 집에 들러 보니 능지기가 보이지 않는지라 능으로 가 보게 되었다. 능지기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
                  지는데도 능 앞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신하는 돌아와 임금에게 그 정황을 상세히 아뢰니 정조 임

                  금은 크게 기뻐하며 후한 상을 내렸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지역의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윤씨들이 외삼미에 터를 잡게 된 이야
                  기, 궐리사(闕里祠), 내삼미 용인 이씨 집안의 전설, 청해 이씨 사당에 얽힌 전설” 등으로 4편이다. 엄

                  밀히 본다면 ‘외삼미 윤씨’, ‘궐리사의 공서린’ 등은 오산시에 들어온 입향조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가수리 청해 이씨 이지란’은 가수리의 입향조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외삼미의 용인 이씨’이야기도 외삼미의 입향조가 아니라 ‘아기장수’설화가 가미된 집안 영웅설화의
                  유형으로 확인된다. 오산에 전하는 오산시 궐동의 입향조가 된 곡부(曲阜) 공씨 공서린 선생의 이야

                  기는 오산의 교육이 어떠한 철학을 기반으로 하여 계획되고 시행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
                  이며 오산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삼미초등학교의 전신인 삼미의숙의 창시

                  자인 윤학영 선생과의 연관성 속에서 생각하고 계획한다면 오산시 교육철학의 바탕이 될 수 있을 것
                  이라 판단한다.



                    그리고 ‘운암뜰’, ‘꽃가마’, ‘선바위’, ‘궁터 부자’, ‘서랑’, ‘당말부자’, ‘장자못’ 등은 이야기의 근간을 이

                  루고 있는 중심 내용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호랑이가 길을 밝혀준 효자’의 이야기는 앞선 2-1 동물관련 설화에서도 다룬 내용으로 2-3

                  과 함께 분류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본고에서는 “일기를 잘 맞추던 사람, 축지법을 쓰던 사람, 축지법을 쓰시던 도사 할아버지”를 중심

      오산시사        된 내용으로 하여 그 의미를 추출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여 위의 3편 자료는 신이한 능력을 갖고 있
                  는 오산사람의 이야기이다. 신이한 능력을 갖고 있는 오산사람의 이야기는 오산사람 관련 이야기 18

                  편 가운데 3편이다.
      제

      6             축지법을 쓰거나 일기를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3편의 이
      권
                  야기는 누읍동과 양산동 큰말에 전하는 것으로 앞의 2편은 누읍동에서 뒤의 1편은 양산동에서 채록
                  되었다. 누읍동과 양산동에서 공통적으로 축지법을 쓰는 도인의 이야기가 전하고 있었다. 비록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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