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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이야기
오산의 정려문 이야기
글 _ 남경식 Ⅰ 오산향토문화연구소 상임위원
정려(旌閭)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진집을 펴낸 금암향우회 한민규 편집이사가 사진을 발견하여
행적을 높이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사진집에 게재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금암동의 ‘정문께’
집 앞에 문(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 라는 지명이 이 정려문 때문에 생성된 지명인 것도 알게 됐다.
에 작은 정각(旌閣)을 세워 기념하는 사진의 현판에는 孝子 贈 資憲大夫 戶曹判書 兼 知義禁府 嘉
것을 말한다. 건립된 기준이 효녀나 정 善大夫 同知 中樞府事 申榮之門(효자 증 자헌대부 호조판서
절을 지킨 정절녀인 경우 열녀문, 열녀 겸 지의금부 가선대부 동지 중추부사 신영지문)이라는 글이
각이 되고, 일반적으로는 그냥 정려문, 새겨져 있어 이 정려문의 주인공이 신영이라는 분인 것은 알
정려각 이렇게 칭한다. 게 되었으나 언제 받았고, 그분의 행적이나 후손이 누구인지
현재, 오산엔 효자정려문 1기와 충신정 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이 정려문이라는
려문 1기가 보존 관리되고 있다. 것을 마을 분들이 일찍이 알았으면 복원하여 보존하였으면
각 정려문의 가문에서 관리하고 있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을 한다.
데, 최정린효자정려문과 이상재충신정
려문이다.
최근 금암동에 있었던 효자문 현판의 최정린효자정려문
사진이 발견되고, 현판이 모셔졌던 효
자정려문사진이 발견됨으로서 금암동 최정린(1760~1799)선생의 효자각(孝子閣)에는 1831년(순조21)
에도 효자정려문이 있었음을 알게 되 에 내린 ‘상지이십이년 효자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 최공정린
었다. 현재 금암동은 세교택지개발지구 지문 을유오월 일 명정(上之二十二年 孝子 贈朝奉大夫童蒙敎
개발로 옛 모습을 잃었기 때문에 이 정 官崔公廷麟之門 乙酉五月 日 命旌)’ 이라는 정려문이 봉안돼
려문을 남기지 못하였는데, 이 마을 사 있다.
람들조차도 그것이 정려문인지를 몰랐 효자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한식골기와 맞배지붕으로 된
다가 2013년 『내고향 금암동』이라는 사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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