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오산문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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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이야기

























                   증 통정대부 이상재충신정려문 정판


                   상재지문 숭정기원재갑 신유 특명가증                덕일(李德一)이며, 어머니는 유자신(柳自新)의 딸이다. 사복시
                   (忠臣 贈通政大夫弘文館副提學知制敎                 첨정 이인후의 딸을 맞이하여 혼인하였다. 1630년(인조8년)

                   兼 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行通德郞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33년(인조11년) 식년문과
                   金井察訪兼承文院著作李尙載之門 崇                  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어 저작에 올랐다.
                   禎紀元再甲 辛酉 特命加贈)’이라 기록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중국사신을 놀라게 할 정도였으며, 이
                   되어 있다.                             때 중국의 사신 강학사가 크게 존경하여 시문을 간청하여 갔
                                                      으므로 이 시(詩)가 『황화집』에 실려 있다. 선생은 항상 강직

                   충신정려문은 1704년(숙종30년)에 왕             하여 출세를 위해 아부하는 일이 없었다.
                   의 특명에 의해 추가로 관직을 증직하               1636년(인조14년) 금정도찰방이 되었는데, 이해 겨울에 병자
                   고 내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송면재              호란이 일어났다. 만주족이 명나라를 멸하고 세운 청나라의

                   (宋冕載 1764~?)가 지은 정려기가 함            왕 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공격해 왔다. 임진왜란
                   께 보관되어 있다.                         을 힘겹게 막아내고 30여년이 지나 잿더미에서 겨우 추스를
                   그럼, 이상재 선생이 전투에 임한 상황              만 할 때 파죽지세로 남한산성으로 밀고 내려오는 청군을 막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기 위해 충청도관찰사 정세규의 종사관으로 출정한다. 정세
                   1607년(선조40년)에 인천 남구 용현동            규는 이상재 선생의 사기가 충천하고 충성심이 강함을 인정

                   에서 태어나 1636년(인조14년)까지 살            하여 신임하고 군의 기밀 일체를 선생에게 위임한다.
                   았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이상재 선생이 용인을 지나 험천(險川 : 지금의 용인시 수지
                   부평(富平)이다. 자는 문거(文擧)이며,             구 풍덕천) 땅에 이르러 날이 저물었다. 바로 그때 불시에 야

                   옥(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병조정              간 습격을 받아 적군을 만나게 되니 모두 겁을 먹고 두려워하
                   랑을 지낸 이계록(李繼祿)이고, 아버지              며 선봉이 무너지고 후진 쪽의 최진립 장군도 전사했고 선생
                   는 광해군과 동서지간이 되는 군수 이               은 급히 대장막사로 달려가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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