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오산문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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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VOL. 65 osan culture
타일러 감화시키어 그 부모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크게 칭찬 현재, 오산엔 효자정려문 1기와 충신정
하여 주며 미천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려문 1기가 보존 관리되고 있다고 하였
논밭을 돌볼 때에도 타인이 논밭에 이상이 생긴 것이 보이면 다. 각 정려문의 가문에서 관리하고 있
이를 고쳐주어 인근 마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선생이 들에 나 는데, 이상재충신정려문에 대하여 알
가면 우리는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말까지 하였다고 아본다.
한다. 1799년(정조 23) 8월 5일 40세로 돌아가시니 이웃 주민 이상재(1607~1636)의 충신정려문은 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눈물을 흘리며 어진 어른께서 돌아가셨 범주초(둥굴넙적한 자연석을 다듬지
으니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누가 걱정해 줄 것이며 사람들 아니하고 놓은 주춧돌)위에 각주를 세
의 그릇된 행실을 누가 고쳐주랴 하며 한탄하였다고 한다. 웠으며 정면은 2칸이며, 측면은 1칸의
이러한 효행들이 알려지면서 순조 31년(1831) 조봉대부(조선 규모이다.
시대 종4품 문관의 품계) 동몽교관에 추증되었다. 전면에서 보면 우측에 이상재충신정려
최정린효자정려각은 1986년에 건립되었으며, 정판은 고종 22 문 정판이 위쪽에 있고, 정판 밑으로
년(1885) 세워진 것이다. 정판은 붉은 색에 음각하고 흰색을 채 송면재가 지은 정려기 현판 1좌가 보존
웠다. 그는 참말로 어진 효자요, 선비였다. 베풀 줄 아는 사람 되어 있다. 이 정려각은 좌측에 협간을
이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참사람이었다. 두어 선생의 신위를 모신 감실이 있고
감실 입구는 판장문(널빤지로 된 문.
널문)으로 마감하였다. 지붕은 한식 골
이상재충신정려문 기와를 얹은 맞배지붕이며, 겹처마로
백골집(단청을 하지 않고 아무 칠도 하
지 않은 집)에다 좌우에 방풍판이 있
다. 건축 양식으로 볼 때 정려문에 협
간을 둔 정려각은 흔치 않은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이 정려각은 최근에 재건
축 된 것으로 우측 칸에는 좌, 우측 벽
면에 각각 백호, 청룡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영조 17년(1741) 증직 되면서 내려진 정
판에는 ‘충신 증 통정대부 홍문관부제
학 지제교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
이상재충신정려각. 좌우에 방풍판이 있는 구조이다 관 행통덕랑금정찰방 겸승문원저작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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