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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의 전투병, 5개국의 비전투병을 파병한 21개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 자유를 지킨 최초의 땅이다.
                  이렇게 오산은 6·25한국전쟁이 개전되면서 국제전의 성격이 표출된 곳으로, 세계의 젊은이들이 자

                  유와 민주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바친 성스러운 곳이다. 오산의 죽미령은 세계평화를 상징하
                  는 성지이며,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오산지역은 1950년 7월 5일부터 9월 22일까지 2개월 18일 동안

                  공산당에 의한 인민위원회를 경험했다. 마을인민위원회는 인민위원장, 여맹위원장, 서기장, 자위대
                  장 등이 선출되었는데, 새로 선출된 인물은 다른 지역에서 온 좌익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오산리에 인민위원회 사무실이 있었고 주민의 권유로 총대를 멘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혈연집단
                  과 씨족 구성이 강한 이곳에서는 마을 청년들을 도피시켜 의용군 모집에 응한 숫자는 적었다. 토착좌

                  익 활동가들이 농민위원회나 민청위원장을 맡기는 하였으나, 의용군 지원을 권유하였을 뿐 강제적으
                  로 징집하지는 못하였다. 인민위원회의 주도하에 토지개혁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구

                  체적인 자료는 보이지 않으나, 처음에는 환영을 받았으나 인민군은 수확고를 확인하여 현물세를 받
                  았음이 확인된다. 모든 수확 작물 잡곡 심지어는 과실까지도 25%를 부과하는 현물세는 일제시대 미

                  곡만을 공출당했던 것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빈농층은 잠시 동안이라도 혜택을 입을 수
                  도 있었으나 자작농으로 바뀔 수는 없었다. 오산은 권율의 독산성 전투, 6·25의 오산(죽미령·갈곶

                  리)전투에서 보듯이 군사적 요충지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며 앞으로도 이 역할은 변하지 않을 것이
                  다. 전쟁이 끝난 2년 후인 1955년 7월 5일에 생존한 부대원들은 전투를 했던 이곳 죽미령에 540명의

                  희생과 그들이 지켜야 했던 가치를 담아 유엔군참전기념비를 건립하였고, 협소하여 1981년 도로 건
                  너편 앞산에 16,500㎡를 새로 마련 유엔군초전기념비를 건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또 오산시에

                  서는 이곳 외삼미동 605-2번지 일원에 테마공원을 조성하고 도내 최초로 한국전쟁기념관인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2013년 4월 23일에 개관했다. 그리고 죽미령 일대에 오산죽미령초전기념평화공원도

                  2019년 10월에 개장하였다. 이어 최초 건립되었던 유엔군참전기념비를 오산죽미령초전기념평화공
                  원 안으로 이전하였다.






                  제3절    화성군의 중심 오산읍(1960~1988)




                  1. 화성군청 소재지 오산읍


      오산시사          1960년 인구 증가로 화성군 오산면은 오산읍으로 승격된다. 농촌은 6·25전쟁 전후 청년 인력이

                  부족하였다. 군 복무를 통해 농촌 인력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쟁 이전에는 볼 수 없
                  던 현상이었다. 하지만 군 복무를 거친 군 경험자들이 농촌 마을에 일하기 시작한 것은 지역 사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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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 제대군인은 그 이전의 농민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1950년대부터 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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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한 고등교육 졸업자들인 것이다. 이 청년들은 농촌 출신들로서 고향마을에 정착하며 새마을지도

                  자의 길을 걷는 이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문맹이거나 구학문을 배웠던 부모세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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