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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농기구 보내기운동을 통해 275농가에 이앙기 26대를 보냈다. 오산천변 정화, 공원지역 지정주요
하천업체를 대상으로 폐수조사가 이루어졌으며, 57개 업체가 행정처분을 받았다.
1987년에 6·10 민주화항쟁이 발발하였고, 오산에서도 오산지역에 시민운동이 태동하였다. 오산
지역의 민주화운동은 시민운동, 노동운동과 그 맥을 같이 한다. 1987년 전후 오산지역에는 두 가지
단체가 있었다. 그 단체는 다섬과 다돔이었다. 다섬은 ‘다 함께 일어서다’는 뜻이다. 이 단체들은 수
원·오산 일대에서 6·10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는데, 6·29대통령직선제 수용선언 이후에는 시민
운동의 방향을 민주화운동에서 자연환경보호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오산천지킴이와 같은 동네지킴이
일꾼이 된 것이다. 당시 오산에는 몇 가지 시민운동의 그룹이 있었다. 오산에는 금성사(지금의 LG),
신호제지 등 산업체에서 활동한 노동운동그룹도 있었다. 현재 이 시민운동가그룹 출신들이 정계와
오산의 행정계로 많이 진출해 오산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기도 하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회복 국민투표가 실시될 때 오산읍은 92.4%가 투표하였고, 찬성이 94.9%로
집계되었다. 이것은 오산주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집계이기도 하다.
이 당시까지 오산은 오산천의 물을 정화하여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후 얼마 안 있어 동탄 쪽
의 오산천 상류의 오염은 점점 심해졌다. 1989년까지 오산천 상수도보호구역 음용수를 마지막으로
사용하였고, 1990년이 되면 광역상수도망을 통해 한강의 팔당물을 식수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제4절 경기 남부 중심도시, 오산시(1989~2018)
1960년 화성군 오산면이 오산읍으로 승격된 이후 근 30년 만인 1989년 1월 1일 화성군 오산읍이 행
정자치단체인 오산시로 승격된다. 1989년 1월 1일 초대 관선 시장인 이승철 시장을 시작으로 최순식,
이성환, 이영민 시장이 관선시장으로 재임하였으며, 1995년 1월 1일 초대 민선시장으로 당선된 유태
형시장을 필두로 유관진, 박신원, 이기하 시장을 거쳐 3선의 곽상욱 시장이 민선시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초창기 관선 시장들의 시정 구호는 거의 모두 ‘새 오산’으로 오산이 새롭게 변하기를 지향하고 있었
다. 반면에 민선 시장들의 시정 구호는 오산이 ‘최고의 도시’로, 또 ‘깨끗한 시정’으로 새롭게 도약하기
를 바라는 꿈과 희망이 넘치는 살고 싶은 도시로 변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가득한 시정 구호였다.
역대 오산시장의 시정방침의 공통점은 시민에게 책임 있는 봉사행정을 펼치는 것을 목적으로 삼
고, 지역 경제의 활성화, 문화복지정책과 시민 삶의 질을 향상을 높이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고, 오
오산시사
산시 전체의 균형적 발전을 꾀하는 행정은 대동소이하였다.
보통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당선되면, 취임하면서 지역발전에 대해 시책을 취임사에서 밝히는데, 이
제
2 는 바로 단체장의 역점 시책이 된다. 이렇게 결정된 시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차적 시
권
행계획을 수립하여 시민의 대표 기관인 지방의회에 보고하고, 예산안의 승인을 득하고 난 후라야 시
행하게 된다. 그리고 시책의 성공은 시민들의 이해와 자발적인 참여와 협조로 공감대가 형성될 때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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