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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 동네의 체육시설과 약수터를 정비하여 시민에 다가가는 행정을 펼친 것이다. 맑고 깨끗한 수
돗물 공급을 위해 광역상수도 5단계 정수시설과 상수도 노후관을 교체하는 사업을 시행했다. 광역도
로망을 확충하기 위한 오산대교, 탑동대교 가설, 남부순환도로·우회도로 개설, 벌음~가장 간 도로
개설, 국도 제2우회도로 개설을 위한 계획을 수립 진행했다. 2020년 인구 20만을 목표로 도시계획을
재정비했다. 진행 중인 운암지구택지개발(2,000년까지), 원동지구 택지개발을 계속 관리하여 대단위
택지개발을 이어갔다.
또 1995년도의 오산시의 특징 중 하나는 시민운동의 활성화이다. 6월 3일 결성된 공정선고협의회
와 오산화성의 경제정의실천연합의 창립이 이를 증명하였다. 도시화 이전부터 존속했던 농촌지도자
오산시협의회 등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오산시의회도 활동 폭을 넓혔다. 행정구역개편 문제가 제
기되자 시의회는 시민의 의견을 현장에 직접 나서서 조사하였고, 민원상담실을 운영하여 시민을 돕
고, 의견을 수렴하였다. 이해는 ‘분규 없는 해’로 선언하고 오산·화성군 내 25개 사업체 노동자와 사
업주들은 시청에 모여 간담회를 실시하였다. 도시 건설에도 시민 의견을 참조하였다.
문화 쪽을 보면 오산시립도서관은 ID카드제를 만들어 경기도 내 최초로 관외 대출을 실시하는 제
도를 채택했다. 『오산저널』이 창간되고, 한국문인협회오산지부는 『새물터』를 간행하였으며, 경기도민
속예술경연대회에 ‘오산 길놀이’가 출전하였다. 오산문화원은 ‘향토작가21인전’을 개최하였다.
1995년 12월에는 오산시사편찬위원회 조례를 개정하고, 1996년 5월부터 제1차 『오산시사』 편찬에
착수하여 1998년 12월 30일에 발간하였다. 그리고, 약 10년 후인 2008년 3월에 제2차 오산시사편찬
위원회를 개설하고 편찬에 착수하여, 2010년 3월에 제2차 『오산시사』를 발간 배포하였다. 2018년 4
월에 제3차 『오산시사』 편찬 사업이 착수되어 편찬 작업 중이며, 2020년 6월 30일에 발간될 예정에
있다. 1996년 오산시는 미국 텍사스주 킬린시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고려촌이 있는 도시인 일본 히다
카시와 우호협정서를 체결하였다.
1995년 9월 17일에는 유태형 오산시장이 타계하여, 11월 보궐선거를 치러 유관진 후보자가 민선1기
6대 오산시장으로 선출되어 잔여임기 동안 봉사하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1996년은 200여 개 제조업체의 97.6%가 경제불황과 경영난에 고전하는 것으로 분석
된다. 오산시민의 발이 되어준 오산여객이 경영악화로 운행이 중단되고, 오산시에 소재했던 한남상
호신용금고가 부도설과 예금인출사태를 겪다 부도처리 되었으며, 국가적 사태인 1997년 IMF를 맞게
되었고, 오산시도 그 영향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오산시사 1997년이 되면 오산이 수원권에서 벗어나 경기 남부권으로 진입하며 독자적 지자체의 영향력을 행
사하는 도시로 자리 잡는다. 외환위기가 발생했지만, 오산시장을 중심으로 온 시민이 단결하여 국가
적 위기를 지자체 차원에서 극복하면서 살기 좋은 도시, 공해 적은 도시, 학교 폭력이 없는 교육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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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좋은 도시로 만들어 갔다. 외환위기에 대해 시민에게 알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권
할 것인지에 대한 가두캠페인을 벌였으며, 국가에서 추진하는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였다. 시는 실
업자구제에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관과 기업은 합심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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