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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고, 시상대와 두침석이 확인된 점으로 보았을 때 목관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 399
상대는 5~15cm 정도의 할석을 한 겹 깔았으며, 시상의 북쪽 끝부분에 길고 윗면이 평평하거나 살 역사
짝 패인 석재를 두침석으로 사용하였으며, 따라서 피장자의 침향은 북향으로 보인다. 시상대는 일반 / 유적
적으로 중앙부 전면에 배치하는데, 13-3호의 경우 서쪽 장벽에 접하여 시설하였다. 또한 내부에서
철정 1점이 출토되었는데, 관못인지 혹은 다른 유물인지 알 수 없으나 만약 목관을 썼다면 시상보다 · 유물
는 관대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13-3호는 가장동(경기문화재연구원) 1호, 가장동(서경문화재연구
원) 5-8지점 돌방무덤, 궐동 1지점 1호, 내삼미동(경기문화재연구원) 5호 돌방무덤과 같은 앞트기식
돌방무덤으로 추정된다. 돌널무덤의 크기는 잔존양상을 통해 추론하였을 때 길이는 약 2m, 너비는
0.7~1m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오산시 관내 및 주변 유적에서 확인되는 통일신라 석곽묘의 일반
적인 크기로 볼 수 있다.
유물은 13-1호와 대부완(다리가 달린 완) 1점과 13-3호에서 병 1점, 철정 1점, 용도미상 철기편이
확인되었다. 대부완의 경우 형태상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병은 평저에 동체는 구형에 가깝고 직
경이 가장 넓은 지점이 동체 중상위인 점으로 보았을 때 7세기 전반경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조사단
은 탑동·두곡동 유적의 무덤이 7세기 전반 경에 처음 들어선 이후 누대에 걸쳐 묘역으로 활용한 것
으로 보았다.
그림 12. 탑동·두곡동 유적 13지점 원경(기호문화재연구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