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오산문화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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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VOL. 68 osan culture
노란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 심부름을 다니던 유년의 추억이 을 판매하며 남쪽으로는 오색시장까
있습니까? 지 이어지는 볼거리가 많은 장터이다.
지금은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에서 손쉽게 막걸리를 살 수가 있 그러나 장터가 열리지 않는 날들에는
지만, 불과 3~40년 전만 해도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 심부름 역사 깊은 옛 장터의 명성이 무색해지
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경제성장과 함께 막걸리 소 고, 쓸쓸하기 그지없는 거리였다. 이에
비가 줄어들고, 그 자리엔 맥주와 소주가 채워졌다. 막걸리는 오산시에서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
그렇게 잊혀지는 듯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다시 사람들의 로 오산장터 공간을 재정비하게 되었
관심을 받으면서 막걸리 시대가 오나 싶었다가 다시 맥을 못 는데, 그에 마을사람들이 십시일반 힘
추고 불황을 맞는다. 그러나 그 불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막걸 을 모아 양조장을 열게 되었다. 오산장
리, 전통주에 조금씩 눈길을 주게 되었고, 그런 관심이 쌓여 터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다양한 방면으로 막걸리, 전통주의 영역을 확대되고 있다. 사 기억 속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고, 그
업적으로는 법적인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소규모 주류제조 아래 평상에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
면허제도에 힘입어 작은 양조장 창업도 활성화되었다. 며 장터를 오가는 이들에게 쉼터가 되
오산의 오산양조㈜도 그러한 맥락에서 설립되어 지금은 5가 어주던 양조장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
지 제품을 출시하여 판매하고 있다. 오산양조가 생기게 된 배 기억을 더듬어 오산지역에 양조장을
경은 다른 양조장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어 눈여겨볼 만하다. 복원하게 된 것이다.
수원에 속했던 오산은 1941년에는 수원군 오산면이 되고, 그 복원의 중심엔 고향마을을 잘 지키
1949년에는 화성군 오산면이 되었다가, 1989년 1월 1일이 되면 고자 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고, 또한
화성군에서도 분리돼 오산시로 승격했다. 오산장은 예로부터 지역사회에 다양한 방면으로 기여하고
명성이 높았다. 실학자 이중환이 1753년에 펴낸 『택리지』에는 자 하는 뜻이 서 있다. 전통주를 제조
시장이 3일과 8일 열렸다고 기록됐는데, 그 오일장의 전통이 해서 큰 수익을 내는 것보다 공동체의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26년 기록을 보아도 경기 남부에 가치가 모든 일의 기준이 되어 마을기
서 오산장은 수원장 다음으로 컸고, 싸전과 우시장 등이 유명 업으로 자리 잡고 양조사업을 이어가
했다. 고 있다.
현재 오산양조㈜가 있는 곳은 오산장이 열리는 초입에 위치 조금 더 자세히 양조장 설립과정을 소
해 있다. 장날이면 오산천 인근부터 상인들이 다양한 물품들 개하자면, 농업회사법인 오산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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