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관악부 100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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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된 제한적인 사료(史料)에 의존 할 수밖에 없어 소상(昭詳)한 활약상을 파악하는 데는 한
계가 있으나 1955년부터는 필자가 창설부원으로 활동하다가 졸업 후 바로 학교 박물관에 근무
하면서 시간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어 정년퇴직을 하였으므로 고려대학교 취주악부와는 반백
년(半百年)을 같이 하였다고 자타가 공인(公認)하고 있어 고려대 취주악부의 역사는 어느 누구
보다 확실하게 인지(認知)하고 있다 할 수 있다.
高麗大學校 六十年誌(1965, 5)에 본교는 음악대학이 없어 지도교수를 얻을 길이 없고 동호
자(同好者)의 집합하는 기회도 마련 못하여 음악부는 극히 소수인으로 구성되고 있다. 그러나
해방 전에도 소수 동호인이 모여 음악부를 조직하고 1940년 제1회 교내 연주대회를 가진 것 같
으나 그 후 전시(戰時)라 잠시 활동이 중단 되었다가 해방 후 응원단의 확충으로 취주악부가 조
직되고 또한 정서교육(情緖敎育)의 제창(提唱)으로 음악을 수의(隨意)과목으로 인정함에 따라
음악 강사를 초빙(招聘)하게 되어 그 지도 밑에 합창부도 생기게 되었을 뿐 만 아니라.......(高麗
大學校 六十年誌 pp. 441-442) 운운(云云)하였는데 1940년에 처음 교내 연주를 하였다 함은
당시 六十年誌 집필자(執筆者)들의 큰 오류(誤謬) 라는 것을 아래에서 밝히겠다.
2. 보성전문(普成專門)과 학예부(學藝部)
조선의 근대가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국운(國運)이 기울어지고 있을 때인 대한제국(大韓帝
國)의 내장원경(內藏院卿)이었던 이용익(李容翊)은 1905년(光武 9년)에 민족과 국가를 구하
는 길은 청년들의 교육에 있다하여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신념(信念)으로 사립(私立) 보성전
문(普成專門)학교를 설립하였다. 2년 후인 1907년에 보성전문은 보전친목회를 창립하였는데,
총칙 제6조에 본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각부를 설치한다 하였는데,
1 서무, 2 경리부, 3 학예부, 4 체육부를 두고.....(고려대학교 100년사 p, 320) 부칙에 본 세칙
에서 불비(不備)한 사항은 관례에 따른다 하였다.
보전친목회는 회원간의 친목을 도모하며 지(智) 덕(德) 체(體) 삼육(三育)을 장려(獎勵)할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