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관악부 100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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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U  W   O
                                                                                                                  총론










               적으로 정기총회는 매년 신학기 3월에 개최하고 서무부 경리부 학예부 체육부 등 4개 부서를

               두었으나 1920년 어느 시기 부터인가 학예부(學藝部)가 연예부(硏藝部) 웅변부(雄辯部) 등으
               로 나뉘고, 학예부에서는 연(硏) 예(藝)에 관한 논문과 이 방면의 소식을 전하였다고 한다. 10

               년 후인 1930년대의 보전학생회는 서무(庶務) 경리(經理) 연구(硏究) 출판(出版) 변론(辯論) 덕
               육(德育) 체육(體育) 연극(演劇) 음악(音樂) 등 9개 부서로 발전하였다고 한다.(고려대학교 100

               년사 p, 323)
                 보전 연예부는 음악회(연주회)도 개최 하였는데 1923년 10월 20일에는 보전도 참여한 全鮮

               男女專門學校 연합음악회가 중앙청년회관에서 개최되었는데 대회장이 터질 정도로 성황을 이

               루었다 (동아일보 1923년 10월 22일)
                 위 기사를 보아 1920년에 연예부가 설치되어 음악활동을 한 것이 분명하다. 1925년 7월 25일

               에는 수재민(水災民) 구제(1925년 乙丑年 大洪水라고도 하는데, 한강의 뚝섬수위가 13.59m로 제방(堤
               防)의 붕괴(崩壞) 범람(氾濫)으로 전답(田畓)등 농경지의 피해가 극심하고 사망자는 647명, 가옥유실 6363

               호, 침수 4만6813호, 피해액은 1억300만원으로 당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를 차지한 액수라 함 -동서
               문화 2002 세계대백과사전 21 p, 12301)를 위한 보전음악회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에는 학생부원 외

               에 당시 명성이 높았던 보전 교가를 작곡한 김영환(金永煥)과 홍영후(洪永厚 홍난파) 최동준(
               崔東俊)등이 출연하였다고 한다 (동아일보 1925년 7월 25일)

                 보전 교가는 1922년을 전후하여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이광수(李光洙)가 작사하
               고 도쿄(東京)음악학교를 졸업한 김영환이 작곡 하였는데 김영환은 홍난파와 더불어 연악회

               (硏樂會)를 조직하여 활발한 음악활동을 하였다고 기록되었다. (高麗大學校 七十年誌 p, 85)

                 1925년 8월에는 평양 진남포 안주 등에서 보전 연예부의 순회 음악 연주회가 열리고 8월 18
               일과 31일에는 만주 안동과 평안도 선천에서 순회 음악회를 열고 동아일보 (1925년 8월 10일,

               13일, 23일, 26일, 9월 4일) 1926년 1월에는 보전친목회 주최로 신춘남녀 음악대회를 개최하였
               는데 보전현악대 등이 출연 하였다. 이처럼 보전학생회가 주최한 음악회에는 당시 유명 음악가

               들이 많이 참여하여 문화행사가 적었던 식민지하의 조선인들에게 문화적 욕구를 충족 시켰다
               고 할 수 있다.(고려대학교 100년사 p, 325) 같은 해 1월 7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보전친목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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