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관악부 100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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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에 을사늑약, 한국통감부 설치(韓國統監府設置), 고종퇴임(高宗退任), 이토 히로
부미 저격(伊藤博文 狙擊), 한일합방(韓日合邦), 조선총독부 설치(朝鮮總督府設置), 고종 승하
(高宗昇遐), 기미년 3,1 만세운동 등 대한제국의 운명은 극난(極難)하여 전도(前途)가 불명(不
明)한 시기였다.
1905년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신념으로 보성전문을 개교하였으나 5년 후인 1910년에는 일
제(日帝)에 의한 강제 합방의 국치(國恥)를 당하고, 1919년 3. 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는 혼란스러운 시기임에도 다음해인 1920년에 보성전문의 몇몇 뜻있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연예부(硏藝部)가 생겼다 함은 경이(驚異)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1950년의 6, 25의 참변을 겪으면서 사회 경제가 극도로 곤궁(困窮)하고, 서울 수복(收
復) 후 학교 경영에 고난이 많았을 시기인 1955년 고려대학교 취주악부가 중진 교수들이 주장
하여 탄생된 것은 당시 선각(先覺)교수들의 식견(識見)을 존경하여야 할 것이다.
음악 예술의 황무지 같던 고려대는 2003년 9월 한국예술종합학교와의 학·예술교류 협정
은 혁신적(革新的)인 사건이라 할 수 있고, 대외 협력처에서 2003년부터 특정액 이상 기부자들
을 위한 크림슨 마스터스 콘서트는 교직원 학생 시민들에 까지 지대한 호응을 얻고 환호를 받
고 있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입학한 건아(健兒)들이 음악을 비롯한 예술적 감각과는 거리가 멀
다고 여기던 향토색(鄕土色)이 짙은 고려대에서, 전공과목 이수(履修)에도 어려울 뿐 만 아니라
음악과 관계되는 학과나 그 유사(類似)학과도 없는데서, 더욱이 학교출석 요일(曜日)이나 수강
시간이 맞지 않음에도 시간에 맞추어 합주(合奏)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할 수 있고 또
이러기를 반복하여 50여회의 연주회를 개최하며 오늘날 까지 지속되어 창립 100주년을 맞이
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1946년 5월 재단법인 보성전문학교는 해산되고 재단법인 중앙학원이 흡수하여 동년 8월 종
합대학 설립인가를 받아 고려대학교로 개명(改名)하였으므로 취주악부의 역사도 이와 같이 보
전연예부로 부터 계산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역사에 비해 기예(技藝)적 실력을 평(評) 한다면 일정수준의 취미동호 단체의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