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관악부 100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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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론










               일람, 2008, p, 31) 파고다 공원과는 개교 이래 같은 동내(洞內) 거나 상접(相接)한 지역이라 신

               학문을 공부하는 보전학생들과는 수시(隨時)로 조우(遭遇) 견문(見聞)하게되는 군악대의 양악
               (洋樂) 연주는 이들의 개화(開化)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제로 체결한 초대 통감(統監)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헤
               이그 밀사(密使)사건으로 고종을 퇴위(退位) 시키고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를 해시킴으로

               서 자연히 군악대도 이산(離散)되고 이후 이들은 경성악대(京城樂隊)라는 이름의 민간 연주단
               체로 활약하였다.

                 보전학생들은 대한제국 군악대의 서양음악을 접하고 많은 감화를 받으면서 1920년 보전 연

               예부가 설치되고 1923년부터 普專음악부는 전국남녀 전문학교 연합음악회, 수재민 구제를 위
               한 보전음악회, 평양 진남포 안주 등지 순회음악회, 보전주최 전국남녀 음악대회 등을 개최하

               여 도탄(塗炭)에서 암울(暗鬱)한 국민의 위안(慰安)과 서양음악의 홍보 보급에 선봉(先鋒)이
               되었다.

                 고려대학교 취주악부는 창설 이래 입학식 졸업식 등의 학교 의전(儀典)과 개교기념행사인 석
               탑축전(石塔祝典)에 참가하였으며, 춘추로 연주회를 해를 거르지 않고 개최하는 한편 대외 각

               종 운동경기 응원을 비롯하여 많은 활약을 하였으나 1980년대 후반 이후로는 전자기기(電子
               器機)의 동원으로 고연전의 응원은 불참하게 되었다.

                 이러한 굉음(轟音)의 전자기기 동원으로 운동경기 응원 불참은 오히려 화음(和音)의 연주회
               에 더욱 정진(精進)하게 되고, 한편 경제발전과 더불어 국민소득 향상으로 음악에 대한 이해

               와 참여도 높아져서 개인악기 지참도 그 수가 늘고 있슴은 연주활동에 매우 고무적(鼓舞的)이

               라 할 수 있다.
                 취주악부 교우 중에는 음악을 전업으로 하는 교우도 많다. 이문용(55 商)은 대형 음악전문

               홀을 경영하며 음악단체 들과 적극 협조하고, 안희주(55 商)는 (株,BONANZA프로모션 악장),
               안영국(61 교육심리)은 부산 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이병호(59 사)는 수도방위사령부(首防司)

               군악대장을 역임후 전역하여 현재도 음악단체에 활약하고 있으며, 이혜선(90 自資大)은 미국
               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여러 대학에 출강(出講)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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