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관악부 100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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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KOREA UNIVERSITY WIND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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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연대 친선경기 응원




                             1960년은 4월 혁명을 이끈 주인공들이 스포츠맨쉽에 의거하여 정열과 힘찬 투지의 대결을 통

                             해 젊음을 과시하는 고연대 친선경기가 11월 1일과 2일에 고려대학교 주관으로 야구, 농구, 럭
                             비, 축구의 네 종목을 통해 진행되었다. 취주악부는 개회식의 양교 교가 연주와 선수 입퇴장의

                             주악을 이끌었다. 열띤 이틀간의 경기 중에는 여전히 농악대가 고대 응원의 상징처럼 나섰는
                             데 연대는 취주악대가 응원을 이끌어 대비되었다. 모든 경기가 끝난 후에는 본교 응원단이 선

                             두를 차지하여 동대문을 거쳐 종로로 나와 시청 앞에까지 이르렀다. 교가와 응원가 그리고 교

                             호를 외치고 마지막으로는 이희봉 교무처장의 만세삼창으로 해산하였다.


                               |  김승수(물리 60) 교우의 회고

                                1960년 4월 18일 본관 앞에서 신입생 환영회가 진행되던 중 선물로 받은 수건을 이마에 두르고 뛰

                                쳐나간 것이 고대의 4.18 민주혁명이 되었습니다. 그날 태평로의 국회의사당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
                                에 청계천 4가에서 정치 깡패들의 습격을 받은 게 4.19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1학기를 마치고 2학

                                기에 들어와 휴학을 했습니다. 등록금 걱정이 되어 육군 간부후보생 시험을 보아 합격하고 이듬해 육
                                군 소위로 임관하여 전방 소대장이 된 것입니다. 장교 봉급을 저축하여 몇 학기분의 금액이 마련되자

                                복학하여 66학번과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강의실에서 옆에 앉아있는 학생을 보니 행진곡
                                악보가 있어 물었더니 ‘취주악부’에서 트럼펫을 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복학 후 취주악부 활동이 시

                                작된 것입니다 정기전은 물론이고 각종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보조금이 전혀 없어 짜
                                장면 값이라도 벌어야했습니다. 예로 ‘이대 메이퀸행사’, 다방에서 갖는 각종 대학생들의‘미팅행사’,

                                명절 때 열리는‘지방콩쿨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정기전 경기에는 많아야 10명 내외, 어떤
                                때는 2~3명이 나가 응원가의 첫음만 잡아주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래도 게임이 이기고 있으면 응

                                원은 저절로 잘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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