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전시가이드 2025년 11월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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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 가득한 시간들, 112x146cm,  캔버스에 아크릴,  2024       반짝반짝그랜드호텔수영장, 38x46cm, 캔버스에 아크릴, 2025







                                       윤진석 개인전 《LOOP OFF》, 2025. 11. 4 - 11. 9
                                     부산 동구문화플랫폼(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380)





            치이며, 그 안에서 그는 비로소 편안히 머무른다. 그것은 단순한 강박이 아니
            라, 반복을 통해 기억과 감각을 더욱 정밀하게 탐색하고 내면의 서사를 끌어       작가는 이를 두고 “저에게는 지도가 있어요. 시계로 만든 지도예요.”라고 말한
            올리는 조형적 방법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흔히 붙는 ‘장애’라는 말이나 작가      다. 그는 자신이 지나온 감각의 궤적을 시계를 통해 치밀히 기록하고 재구성
            를 ‘극복’의 이야기로 환원하려는 태도를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윤진석 작가      한다. 화면에 적힌 “백조세탁소”, “근대화슈퍼”, “첫째 큰집” 같은 이름들은 단
            의 작업은 진단명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립적인 미학이며, 작가 자신이 구축       순한 지리적 표식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공기와 빛, 어쩌면
            해낸 자율적 질서와 언어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공간의   알 수 없는 감정적 떨림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사적 풍경이다. 윤진석의
            시학』에서 말했듯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축적된       회화 속 시계들은 결국 개인적 기억을 넘어선 보편적 정서를 환기시키며, 우
            내면의 확장이다. 작가의 시계 속 공간도 단순히 어느 장소를 기념하는 것이       리 각자의 삶 속에서 한때 스쳤던 감각과 연결되도록 한다.
            아니라, 그곳에서 느낀 서늘한 떨림이 다시 작가를 불러내는 장소이며, 작가
            는 그것을 시계 위에 조용히 숨겨두었다가 때때로 들킨 듯 부끄럽게 드러낸다.      최근 윤진석 작가의 작업은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산문화재단, 예술의전당, 울
                                                            산국제아트페어, 뱅크아트페어, AHAF호텔아트페어,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윤진석의 시계세상, 앞으로 열릴 새로운 장(場)                      (장문원 지원사업 선정), 러쉬코리아, 하나금융그룹(하나은행) 등 다양한 기
                                                            관과 플랫폼을 거치며 국내외 미술계에서 점점 더 활발히 소개되고 있다. 이
            작가에게 시계는 결코 기능적 도구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을 불러        는 더 이상 ‘장애예술가’이라는 구획 속에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윤진석’
            들이는 열쇠이자 마음을 비추는 상징적 기표다. 작가는 시계의 앞면과 뒷면        이라는 독자적인 예술 세계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는 중요한 징후다. 작가
            을 한 화면에 병치하거나, 숫자를 일부러 지우거나 흐리게 만들어 시계를 본       는 반복을 통해 감정을 층위별로 쌓아올리고, 기억을 고유한 리듬으로 직조
            래 기능에서 이탈시킨다. 그 순간 시계는 더 이상 물리적 대상이 아닌, 작가가     하며 이를 통해 ‘시계 회화(clock narrative art)’라는 자신만의 독창적 장르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기 위해 설계한 하나의 지도(emotional map)가 된다.   를 구축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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