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전시가이드 2025년 11월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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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흥국사 원통전의 수월관음도(출처 : 문화유산청 포털) 장 메칭거의 로이즈오 블루(L’Oiseau Bleu, 파랑새),
캔버스에 유채, 230x196cm, 1912~13(출처 : 위키백과)
다. 그러나 상좌가 몰래 엿보는 것을 알아채 버린 파랑새는 법당의 단청과 벽 미를 느끼지 못하고 미래의 막연한 행복만을 추구하는 병적인 증상을 말하는
화를 완성하지 않고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지금도 대웅전 동쪽 데 오늘날에는 현재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직장인을 비유하여 부정적인
도리에는 바탕만 칠해져 있고 덧그림이 빠져 있다고 한다. 의미로 쓰이고 있다.
서양 미술에서 파랑새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는 큐비즘(Cubism)의 이론가이 그렇지만 우리나라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수월관음도에 등장하는 파랑새는
자 작가인 장 메칭거(Jean Metzinger, 1883~1956)의 <로이즈오 블루 불교적 상징으로서 관음의 뜻을 전하거나, 중생의 기도를 하늘로 전달하는 전
(L’Oiseau Bleu, 파랑새)>를 들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파랑새를 주제로 세 령자(傳令者)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월관음도는 ‘33관음 중의 하나로
명의 여인과 거울, 부채, 배, 피라미드, 따오기 등을 서로 다른 공간과 시점으 물 위의 달처럼 맑은 마음으로 중생을 비추는 관음’을 형상화한 그림으로 파
로 나누어서 병렬적으로 표현하였다. 화면 중앙의 서 있는 여인은 애정 어린 랑새가 지닌 청색은 불교에서 지혜·청정·심연(深淵)의 색으로서 번뇌의 탁함
모습으로 두 손에 파랑새(blue bird)를 감싸안고 있으며, 우측에는 먼 바다에 을 뚫고 진리를 비추는 마음을 상징한다.
증기선이 굴뚝에서 연기를 뿜으며 항해하는 모습을 그렸다. 화면 왼쪽에는 오 파랑새는 대체로 관음보살이 앉은 바위나 연꽃 옆, 혹은 버드나무 가지 위에
른손에 노란 쥘부채인 에방타유(éventail)를 들고 왼손에 거울을 쥔 여인이 자 그려졌으며, 깃털은 세밀하고 섬세한 필선으로 묘사하여 관음보살의 정(靜)적
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고 있다. 하단 중앙에는 검은색 목걸이를 목에 건 여인 인 모습에 파랑새의 동(動)적인 에너지를 유입시켜 조화를 이룬다.
이 누워 있으며, 곁에는 과일이 담긴 그릇과 받침대, 붉은 따오기(Scarlet ibis) 파랑새는 단순히 부수적 존재가 아니라 관음보살의 자비가 중생의 세계로 연
한 마리가 있다. 파랑새를 주제로 한 작품이지만 붉은 따오기, 녹색 해오라기 결되는 순간을 색과 형태로써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불교적 상징
(green heron) 등의 다른 새도 등장시켜 화면 전체에는 여러 가지 사물과 요 으로는 자비의 전달자이지만 수월관음도에서는 청정한 마음의 움직임을 시
소들이 복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각적으로 표현된 회화적 메타포(metaphor)라 할 수 있다.
파랑새가 등장하는 서양의 연극도 있는데 벨기에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모 파랑새는 번뇌의 물결 위에 떠 있는 마음 한편에서 자비의 소리를 지저귀는
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동화극 <파랑새 미약한 존재이지만 푸른 날갯짓 속에 고요함이 깃들어 있고, 그 고요함 속에
(L’Oiseau Bleu)>이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가까운 곳에 있다 생명이 숨을 쉰다.
는 것을 상징하는 내용으로 여기서 파랑새 증후군(Bluebird syndrome)이라 수월관음도의 파랑새는 청정한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보여주는 회화적 숨
는 용어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결이다.
파랑새 증후군이란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해서 현재의 일에는 흥 우리 모두의 고귀한 마음속에도 파랑새가 숨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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