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전시가이드 2025년 12월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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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의 전시포커스


         PROXY DATA
        편대식 작가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편대식, 2025 신작중심의 <PROXY DATA >전시장 이미지



        편대식의 회화는 ‘시간을 물질화하는 행위’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자신을 ‘플      의 흔적은 수행(performance) 그 자체다. 회화는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매
        레이어(Player)’라 부른다. 게임의 규칙처럼 반복과 몰입의 루프를 스스로 설   번 다시 수행되는 현실 생산의 장이다. 그는 말한다. “시간을 물질로 환원하는
        정하고, 그 안에서 현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또 다른 세계를 구축       행위는 기록을 통한 감각적 경험의 추구다.” 이 기록은 단순한 복제나 저장이
        하기 때문이다. 《Proxy Data》는 기후학의 대체자료 개념에서 차용된 용어지   아니다. 그 속에는 감각의 데이터가, 손끝의 시간 단위로 쌓인다. 마치 한 겹의
        만, 여기서 그것은 직접 관측할 수 없는 시간의 감각을 유추하기 위한 회화적      색이 지난 계절의 빛과 온도를 머금듯, 《Proxy Data》는 시각과 감각의 단면을
        장치로 변주된다. 색의 층위를 쌓고 갈아내는 행위, 연필로 표면을 지워내는       통해 ‘유추된 시간’을 시각화한다.
        시도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감각의 물질화를 향한 실험이다. 그 표면은 시
        간의 퇴적층이며, 동시에 기억과 몰입의 현장이다. 작가가 말하는 ‘플레이어’      작업은 또한 ‘이미지의 소거’와 ‘물성의 귀환’을 반복한다. 연필의 광택, 퍼티의
        와 ‘Proxy Data’는 서로 다른 세계의 규칙을 지닌 두 좌표다. 하나는 중독적 몰  결, 한지의 주름은 처음엔 제거 대상이었으나, 오히려 제거의 과정에서 다시
        입의 수행이고, 다른 하나는 불완전한 데이터로서의 감각이다. 이 두 축이 교      되돌아온다. 작가가 말하듯, “이미지의 귀환은 목적의 좌절이지만, 동시에 감
        차하는 지점에서, 편대식의 회화는 수행의 기하학으로, 그리고 실패의 윤리학       각적으로 매력적인 실패의 결과값”이다. 이 실패는 조형적 결함이 아니라 감
        으로 확장된다. 편대식의 세계에서 회화는 더이상 재현의 장르가 아니라 시간       각의 재구성 과정이다. 베케트의 말처럼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과 감각이 부딪히는 실험의 장이 아닐까.                          실패하라.”는 미학이 여기서 구현된다. 그가 반복적으로 칠하고 갈아내는 행
                                                        위는 수행과 중독의 경계에서 진행된다. 스스로 정한 규칙을 실행하며, 통제와
        수행의 기하학: 기록과 유추의 표면                             해방의 긴장 사이에서 회화의 리듬을 생산한다. 이러한 반복은 수행의 윤리이
                                                        자 존재의 확인이다. 그는 수행(修行)이 아니라 수행(遂行)을 한다고 말한다.
        도로테아 폰 한텔만(Dorothea von Hantelmann, 1969~)은 “예술은 세계를   완성을 향한 정화가 아니라, 실행 그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재현하지 않고, 세계 속에서 무언가를 행하게 한다”고 말한다. 편대식의 회화      《Proxy Data》의 색층은 대체자료처럼 ‘직접 관측 불가능한 시간’을 유추하게
        가 바로 그러하다. 작가의 작업은 그려진 이미지보다 그려지는 행위의 과정에       한다. 색의 패턴은 더 이상 변하지 않는 화석이자, 동시에 과거와 현재의 흔적
        무게를 둔다. 색을 수집하고, 연필을 눌러 쌓고, 다시 갈아내며 남겨지는 물질     이 중첩된 생동하는 데이터이다. 회화는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 감각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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