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5년 12월 E-book
P. 43

(좌로부터) Proxy data, The Record, Proxy data, 50x50cm, 2025




            을 적층하여 시간의 물질성을 실험한다. 이는 회화의 재현 개념을 확장하는
            시도이며, 감각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행위이다. 결국 편대식의 회화는
            ‘기록’과 ‘유추’ 사이의 표면에서 진동한다. 기록은 과거의 잔류이고, 유추는 감
            각의 미래이다. 그 두 흐름이 맞닿는 지점에서, 표면은 생명체처럼 호흡한다.
            그의 검은 사각형은 더 이상 무(無)의 상징이 아니라, 시간을 품은 감각의 스
            펙트럼이다. 그러한 표면 위에서 작가는 플레이어로서 끊임없이 규칙을 실행
            한다. 그 과정이야말로 수행의 기하학이며, 실패의 윤리이다.

            실패의 윤리에서 감각의 생성으로

            편대식의 세계에서 실패는 결핍이 아니라 생명력이다. 이미지를 지우려는 시
            도는 항상 실패하고, 그 실패가 감각을 낳는다. 통제의 좌절이 오히려 회화의
            생기를 회복시킨다. 이러한 미학은 “형식의 균열이 감각의 통로로 변환되는
            순간”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의 회화는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불
            완전함이 감각의 문을 여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철학은 명확하다. 현실로부
            터 탈주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만, 그 탈주의 과정에서 오히려 현실의 구조
            를 직시하기 때문이다. 회화는 그에게 ‘도피’이자 ‘복귀’의 장소이다. 이제 그
            의 실험은 두 방향으로 확장될 것이다. 하나는 물질적 실험의 확장-퍼티, 페
            인트, 샌딩, 연필, 아크릴 등 매체 간의 충돌을 통한 새로운 표면의 탐구. 또 하
            나는 데이터적 사고의 심화-색·시간·감각의 로그를 축적하여 회화적 데이터
                                                                              Proxy data, 60x60cm,  나무 패널에 아크릴릭, 2025
            베이스로 구축하는 과정이다. 편대식의 수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작가는 회
            화를 다시 쓰고, 실패를 갱신하며, 감각을 재정의한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만
            의 현실을 생산한다.

            "내게 있어서 작업을 하는 행위는 게임하는 것과 같다. 일정한 규칙을 설정
            하고 어렴풋이 기대할 수 있는 결과를 향해 가는 현실로부터 유리된 세계
            속으로의 중독이다. 내 작업은 맹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개념적으로 알고         그리고 이미지를 소거하는 과정 중, 한지를 배접하며 발생하게 된 주름을 연
            있던 맹점을 실험을 통해 실제로 체험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봐도 충격적이         필의 광택이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게 만들며, 수많은 시각적 자극을 양산하는
            다. #중략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후 한지라는 재료에서, 주름이나 요철 등을 제거할
                                                            수 있는 벽면으로 바탕재를 변경하게 되었다. 표면을 갈아내어 매끈하게 만들
            하지만 어떠한 시도를 하더라도 ‘이미지’라는 것은 소멸되지 않고, 계속해서       고 그 위에 연필로 칠하면 완벽하게 이미지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새로운, 그리고 더 많은 이미지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연유는 연필이라       했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진, 어떤 감정도 개입되지 않는 검은 사각형을 통
            는 재료에 있다. 연필은 정서적 레벨을 제한하는 아주 담백한 재료이자, 밑그      해 물성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상상하며 칠해 나갔다. 그렇게 다 칠하
            림을 그리는 보조 도구로 주로 사용되며, 어두움을 표현하는 검은색이면서 가       고 검은 사각형 앞에 섰을 때 예상치 못한 이미지들의 현시는 나에게 당혹감과
            벼움을 상징하는 반짝임을 동반하는 재료이다. 그러한 연필을 한 획, 한 획, 정    동시에 안도감을 주었다." - 편대식 작가노트, 플레이어 중에서
            직하게 쌓아 올리고, 그 쌓아올린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어 시간의 흔적을 담
            아내는 재료로 사용했다. 처음에는 그런 연필을, 눌러서 자국 낸 화지의 선을      편대식 작가의 전시는 12월 20까지 아트프로젝트CO에서 진행된다.
            드러내는 용도와 연필로 칠한 결을 이용해 공간감을 극대화하는데 사용했다.


                                                                                                       41
                                                                                                       41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