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전시가이드 2025년 12월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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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Earth Life Rhythm

        박기웅 작가


        글 : 박기웅 작업노트













































                    Earth Life Rhythm <25P-55>, 80x80cm, Acrylic on canvas, 2025



        나는 최근에 색채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붓질의 힘과 공간       작품의 표면은 물을 품고 있는 대지의 초원이나 이끼 낀 바위의 피부처럼 보
        이 드러내는 여운들을 함께 복합하여 추상회화를 제작하는 생각을 실현하게         일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형성한 상단의 구획과 하단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되었다. 그 결과 단순하면서도 미묘한 균형감과 색채가 주는 힘이 서로 간의       지점에서, 인간이 만든 세계조차 결국 자연적 과정을 통해 재자연화됨을 보
        상관관계를 형성하고,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일루전에 의해 화면이 생생하고도       여 주고자 한다. 나는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난, 사물의 자기적 시간성을
        새로운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균열은 일정한 방향 없이 확산되지만, 전체
                                                        적으로는 은근한 파동과 리듬을 형성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나는 이 과정
        작품<25P-55>의 전체에서 보이는 균열과 거친 질감은 단순한 물리적 노화      에서 표현한 붓질이 의도한 선이 아니라 우연이 만든 선들의 군집이며, 통제
        가 아니라, 시간이 남긴 침전물이다. 이 텍스처는 “지속”이 무엇인지 시각적      와 무질서가 절묘하게 교차한 형태적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드러내고자 한다.
        으로 말한다. 표면은 파괴되면서도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있으며, 하이데거
        가 말한 ‘현존재의 시간성’처럼, 소멸과 지속이 동시에 얽혀 있다. 녹색의 넓은    교차와 리듬 그리고 여백으로 이어지는 화면의 단순한 변화에서, 무엇을 묘사
        단색 면은 단조로움이 아니라 고요한 힘을 품고 있다. 색의 균일함 속에서 미      하느냐보다 ‘표면 그 자체’가 주제이지만, 회화의 본질—색, 표면, 물질성—이
        세한 편차가 반복되며, 이는 ‘차이 속의 반복’이라는 들뢰즈적 패턴을 떠올리      극도로 순수한 형태로 교차한 상태이며, 경계와 소멸 그리고 대지에서 발현
        게 한다. 색 하나가 이렇게 많은 층위를 드러내는 것은, 동일성 아래 숨어 있     하는 생명의 원초적인 힘을 “비재현적 감각”을 통해서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는 미세한 차이들의 생동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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