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2년 07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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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생 폴 병원 환자의 초상>, 1889년, 32.2×23.3cm,
                                                            반 고흐 박물관(암스테르담)

            학의 허구를 확인하고도 남겠지요.                              다. 그런데 얼굴 모습은 무엇인가 의심하는 모습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제리코의 남아 있는 5점의 초상화는 손이 없는 가슴 길이와 정면 프로필 모       있으며 입술은 꽉 다물고 있습니다.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은가 봅니다.
            습입니다. 캔버스의 크기는 다양하지만 머리는 모두 실물 크기에 가 깝지요.       실제로 이 남자는 자신이 프랑스군의 장교라고 믿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
            제리코의 정신질환자 시리즈 중에서 세 남자는 눈높이에서 바라본 그림이지         투 동작을 연습하였다고 합니다. 추정컨대 이 사람은 참전 군인이 아닐까요?
            만 여자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인 것으로 보았을 때, 각 그림이 다른 장소      혹시라도 끔찍했던 군생활의 트라우마로 망상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에서 그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인들은 살피에트르 병원에서, 남성은 샤       초상화 역시 어두운 색상은 우울한 감정을 연상시키며 어두운 분위기를 나타
            랑통과 비스터의 정신병원 수감자 중에서 선발된 것으로 보입니다. 초상화 속       내는 데 적합합니다.
            인물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병명으로만 식별되고 있지요. 이 초
            상화의 인물들은 누구도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아서 자신의 생각에서 길        아마도 단 한 번의 스케치로 그려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평가들은 종종 제
            을 잃은 것처럼 그들의 이름도 사실 알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의 시선에서 불     리코의 초기 조각적인 스타일과 달리 말년의 이와 같은 작품들이 훨씬 회화적
            편함과 산만함을 느껴지기에 그들은 그림 이 그려지는 과정에서 전혀 개입되        으로 작품의 완성도와 가치가 높다고 말하지요. 이런 초상화들은 붓 터치가 강
            지 못하고 화가와 단절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그림의 의뢰자가 아니었기       렬하고 격한데 이는 초상화 속의 인물의 특징 을 반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
            에 어떻게 그려졌는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없었을 것이고요.       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초상 화들은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
            각각의 초상화는 3 : 4 비율의 프로필로 표시되었고 일부는 왼쪽에, 일 부는     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모습의 초상화 속 사람들이 모두 그런 정
            오른쪽에 그려졌습니다. 이 포즈는 공식적이고 전형적인 초상화 포 즈이며,        신적 질병을 가졌다고 단정하는 것은 절대 안됩니다. 제리코는 그들의 내면의
            배경 그림이 없어 어디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상세 불명의 초상화입니다.      고통을 그리려고 한 것이지 그들의 병의 특징 을 감별하려고 그린 것은 아니었
                                                            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리코는 그 기질과 삶에 있어서도 낭만주의 예술가의 전
            현대 정신 의학의 치유                                    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지요. ‘미술계의 바이런’으로 불리기도 한 그는 외모
            스위스의 오스카 라인하르트 컬렉션 암 뢰머홀츠 미술관에 소장 중인 테오도        에 신경을 많이 쓰는 댄디보이인 동시에, 위험에 도전하고 힘을 과시하기 좋아
            르 제리코의 <군대 고위 장교라는 망상에 괴로워하는 사람Portrait of a Man   하는 남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생활에서는 숙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사
            Suffering from Delusions of Military Command>의 초상화입니다.   생아를 두었는가 하면, 우울증과 자살 시도, 그리고 파산에 이어 중병을 겪었
            검은 배경 속의 이 남자는 커다란 동전을 훈장처럼 목에 걸고 있고 쓰고 있       고 33세의 나이에 요절하는 파란만장한 비극적 개인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는 모자에는 붉은 술이 달려 있습니다. 한쪽 어깨에는 담요를 두르고 있 습니
             이 코너는  칼럼니스트의 의도하는 바를 존중하며 경어체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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