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전시가이드 2022년 07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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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관 내부 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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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덕사 대웅전 측면 우미량                                        수덕사 동측 벽화, 수생화도




            자라는 다양한 식물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야생초를 풍성히 꽂은 모습을 묘사       물화로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정도로 수준 높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하였다. 서측 상단의 벽화는 '야생화도'로서 도자기 수반에 모란과 맨드라미,
            나리를 비롯한 여러가지 꽃이 꽂혀 있는 구도에 주변을 날고 있는 나비를 그렸      이렇게 수준 높은 벽화를 모사한 주인공은 임천(林泉, 1908 ~ 65)선생이다. 생
            다. 이 벽화를 요즘의 회화적인 측면에서 분류하자면 정물화에 해당될 것이다.      전에 '살아 있는 문화재'라 불렸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개성(開城)에서 태어나
                                                            간도(間島)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 도쿄미술학교(東
            서양의 정물화(still life)는 고대 로마의 모자이크나 폼페이의 벽화에서도 발  京美術學校) 동양화과에 입학하여 2년간의 공부를 마치면서 고고미술에 대
            견되지만 중세까지는 거의 발달하지 못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가 되어서야       한 관심이 깊어졌다. 이후 1933년 관음사 대웅전(觀音寺 大雄殿)의 보수 공사
            비로소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세밀 묘사의 대상으로 정물화가 성행      에 채색공(彩色工)으로 참여한 이래 성불사 극락전(成佛寺 極樂殿)이나 평양
            했는데 특히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가 유행했었다. 라틴어의 '바니타스'는   대동문(平陽 大同門), 화엄사 각황전(華嚴寺 覺皇殿), 개심사 대웅전(開心寺
            '인생무상’이란 뜻인데 바니타스 정물화는 삶의 허무와 죽음의 필연성, 쾌락의      大雄殿) 등의 보수 공사에서 채색 조사원으로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였다.
            덧없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꽃이나 과일, 해골과 뼈, 책, 깃털 펜, 연기가 피어
            오르는 촛불의 심지 등을 소재로 그렸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갈색톤으로 채색       해방 이후에도 계속 국립 박물관에 소속되어 지속적으로 문화재의 복원(復
            하여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인간      元)과 보수(補修), 실측(實測) 공사를 담당하며 이 분야에서는 유일하고도 독
            의 운명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며, 아울러 '찰나(刹那)의 순간'이라도 짧은 생을    보적인 최고의 권위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불국사 대웅전(佛國寺 大雄殿)이
            가치 있게 더 열심히 살라는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수덕사 벽화에      나 경복궁(景福宮), 수원 팔달문(八達門), 촉석루(觸石樓), 보신각(普信閣), 남
            그려진 꽃들은 바니타스 정물화가 담고 있는 '찰나의 순간' 만을 의미하는 것      한산성(南漢山城) 등 국보급 건축물의 보수ㆍ중수(重修) 공사를 직접 맡아 했
            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불교에서 여섯 가지 공양 중의 하나인 꽃을 공양하       고, 국립 박물관 학예관을 비롯해 문화재 보존위원회 제1분과 위원 등을 역임
            는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견딘다        했으며, 1962년 임천 고건축설계사무소를 창설하여 후진을 양성했다. 특히 단
            고 해서 수행(修行)을 뜻하며 장엄과 찬탄을 상징하기도 한다.              청(丹靑)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모사작품(摸寫作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단
                                                            청의 이론적 체계 정립에 이바지한 공헌과 문화재 보존 체계를 세운 업적은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는 서양의 정물화가 성행할 때보다 훨씬 오래 전인 1308     다시 한번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일이다.
            년에 그려졌지만 그 어떤 서양의 뛰어난 정물화와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아울러 수덕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던 임천 선생이 수덕사 벽화
            다. 활짝 핀 꽃송이와 풀들을 매우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이 모사도를 만약에       를 모사한 공로는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며, 국보나 다름없는 모사도는 더욱
            아무런 설명 없이 다른 나라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를 한다면 서양의 정       소중히 보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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