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 2024년 1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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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Robert Indiana, LOVE(G-P-B), 66 x 53, screenprint, 1996 ©ADAGP     (우) 이지영, Love Moon Rich Gold, 91 x 100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ADAGP






            피아적 기분을 담고 싶었다고. 전통으로부터 내려오는 채색화와 도자를 통해        하기 쉽지만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다. 에로틱하면서 종교적이고 자전적이며
            과거와 현대를 잇고 정감 어린 한국미의 선율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       다양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HOPE’, ‘ART’
            날 수 있다는 따스한 울림을 표현하고자 하였단다. 색채와 표현방식의 추상성       등 다양한 알파벳과 숫자 조각을 스케일과 색상은 각각 다르지만 항상 기울어
            과 구상성의 적절한 조화를 추구하려고 하였다. 일찍이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       진 문자를 포함한 셰리프 스타일로 제작해 세상에 선보였다.
            시는 “조선의 도자기에는 정이 있어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드는 미의 신
            비가 있다”고 역설한 바 있었고 이 말을 신봉하는 이지영 작가는 자신이 그려      결론적으로, 이지영 작가의 독창성은 〔AIAM국제앙드레말로협회〕 회원 작가
            낸 백자도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꽉 찬 투각의     들 가운데서도 독특하게도 ‘전통 미학’의 뿌리에서 출발해서 현대적인 요소를
            이미지를 그려내는 『백자 투각 달 항아리』를 작업하는 과정은 수행이자 마음       가미한 ‘언어 기법’을 적용시킴으로써 대중 접근성이 탁월하다는 점에 있다.
            을 비워내고 정화하는 과정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정화작용들은 스스로를 치        여기서 이지영 작가가 작품 이미지에 일부 차용한 <팝 아트>의 개념은 흔히
            유하게 되고 곧 사람 과 인류의 마음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      발견되는 일상의 잔영이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는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를테면, 보름달을 닮은 백자는 여인의 모습       다. 일상적으로 흘러 넘치는 영상 또는 물체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는 반 미학
            이기도 하며,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품고 보듬고 안아줄 수 있는 넉넉함, 사람     적이고, 다다 적인 사고방식인 셈이다. 그러나 이지영 작가의 ‘표현기법’이 다
            의 아름다운 마음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지영 작가의 대표작 가      다이즘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팝 아트>가 세련된 고도의 기술에 의해 ‘일
            운데 하나인『 Love Moon Rich Gold』는 ‘백자 투각기법’이라는 소재를 응용한   상’을 미술의 영역으로 또는 사회의 체계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을 응용했다
            독창적인 회화 속의 ‘고전 미학’과 ‘현대 미학’의 융합 작용을 통해, 하나의 희   는 점에 있다.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는 구상적이지만 회화적 사고 그 자체는
            망과 행복의 메시지와 긍정의 에너지로 널리 퍼져 나가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추상성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여느 <팝 아트> 계열의 작가들과 마
            그녀의 작품이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1928-      찬가지로 이지영 작가는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2018)의 대표작 『LOVE』와 절묘하게 오버랩 된다. 로버트 인디애나가 1965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영 작가 고유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의뢰로 크리스마스 카드에 인쇄할 그림을 디자인       의 <한국적 팝 아트>는 발생초기부터 사회 비판의 의도를 뚜렷이 갖고 구태
            하면서 시작된 원본 이미지는 선명한 녹색과 파란색이 번갈아 나타나는 공간        의연한 사회 질서에 대한 비판으로서 사회와 예술을 접목시키고자 했던 <영
            에 굵은 빨간색 글씨가 눈에 띄게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이후 『LOVE』시리즈    국식 팝 아트>와는 원천적으로 구별된다. 더군다나,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
            는 판화, 회화, 조각, 현수막, 반지, 태피스트리, 정부 발행 우표 등으로 재탄생  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의 애매하고 불분명한 형태와 주관적인 미학
            하며 대중의 시야에 빠르게 각인됐다. 특히 1970년에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      에 대한 반동으로 발생함으로써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우월함이 깃
            (Indianapolis Museum of Art)에서 대형 강철 조각으로 선보여 세계에서 가  든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는 <미국식 팝 아트>와도 확연히 다르다. 아무
            장 유명한 공공 조형물 중 하나가 됐다. ‘러브 공원(Love Park)’이라는 이름으  쪼록 그녀의 지극히 동양적인 화폭이 서양적인 요소와 화합하는데 적지 않은
            로 더 잘 알려진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플라자 앞을 비롯해 뉴욕, 싱가포    영향을 준 로버트 인디애나와 마찬가지로 〔ADAGP 글로벌 저작권자〕의 일원
            르, 타이베이 등 세계 주요 도시와 건축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고, 주변       으로써, 이지영 작가만의 달 항아리가 ‘새로운 정신’에 의해 변화 무쌍하게 환
            환경에 팝아트의 재치 있는 감성을 더하며 분주한 도시를 밝은 컬러로 물들였       골탈태하기를 기대해 본다.
            다. 저명한 미술사가 주디스 헤클러(Judith Heckler)는 『LOVE』에 대해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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