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전시가이드 2023년 09월 이북
P. 48

전시가이드 쉼터


        쉰개


        글 : 장소영 (수필가)



















































        들녘은 모내기를 하려 물을 댄 논에 하늘의 구름이 내려앉아 찰박대고 있다.       아이들의 미술 소재였다. 개울가에서 첨벙대며 놀다 배가 고파지면 살금살금
        곁에 이른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어린모들이 연둣빛을 돋우고 살랑댄다. 휙휙       참외밭으로 기어들다 들켜 벌을 섰다는 얘기는 농촌에서 자란 이들이라면 누
        지나치는 차창 밖 신록이 싱그러운 입김을 토해내니 시야가 산뜻하다. 오월의       구나 간직하고 있는 흔한 이야기다. 지금 같으면 절도죄로 잡혀 갈 테니 언감
        풍경은 여기저기 활기가 넘실댄다.                              생심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예전엔 그랬다.

        어느 동네 어귀에 다다르니 붉은 장미가 타오르는 담벼락이 보인다. 길가 트럭      외할아버지 생각도 난다. 워낙 고령에 엄마를 얻으셨기에 내가 기억하는 할아
        에는 때 이른 참외가 쌓여 있고, 호객할 필요도 없이 참외는 그 노란빛으로 사     버지는 항상 성성한 백발에 회색빛 눈동자의 연로한 모습이다. 첫 외손녀에
        람을 끌어당긴다. 차를 멈추고 노란 봉투에 노란 참외를 골라 담는 모습이 이      대한 사랑이 각별하셔 날 업고 고샅에 자주 나들이를 나서셨다. 그럴 때면 할
        젠 생경하지 않다. 철 잊은 겨울 수박, 딸기 등이 비닐하우스에서 사철 재배되     아버지 갈비뼈에 다리가 닿았고, 가쁜 숨에 흐들흐들 떨림이 전해 와 좋으면
        고 있으니 기호에 따라 과일을 골라먹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서도 불안했다. 도롱태에 앉혀 놓고 끌어주시거나 짓궂게 놀아 산발인 내 머
                                                        리칼을 쓰다듬어 주시던 손길도 아련하게 그립다.
        예전엔 ‘참외’하면 한여름 들녘 참외밭 풍경이 자연스레 펼쳐졌다. 뜨거운 햇
        볕에 따글따글 익어가는 참외가 단내를 풍기노라면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다.       몇 안 되는 기억 속 유독 할아버지께서 참외를 다 드실 때까지 옆에서 촐랑대
        참외서리를 지키는 원두막에 사람들이 모여 놀거나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은        며 기다리고 있던 방안 풍경이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다. 참외를 드



        46
        46
   43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