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전시가이드 2023년 09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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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의 전시포커스
Untitled, 73X61cm . Mixed media on canvas. 2023 Untitled, 73X61cm. Mixed media on canvas. 2023
2023. 8. 30 – 9. 20 맥인아트 (T.0507-1415-6532, 봉은사로 524)
Rebirth, 회사후소(繪事後素) 류이섭 작가가 적지 않은 나이까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바탕이
마련된 이후에야 작품세계를 완성하겠다.”는 예민하고 완벽한 성품 때문이다.
맥인아트, 류이섭 개인전 이러한 작가의 성정은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유교미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논어(論語)·팔일(八佾)』 편에 나오는 회사후소란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
의 뒤에 행한다.”는 뜻으로, 내면의 덕성과 깨달음을 얻은 연후에야 비로소 형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식으로서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한국-프랑스-이탈리아 등지에서 만
난 선배 작가들과의 긴 교류를 통해 ‘자신의 호흡’을 발견한 작가의 오늘이 ‘회
서울시 인터콘티넨탈서울코엑스 B2에 자리한 맥인아트(대표 권나경)에서는 사후소’와 매칭되는 부분이다. 2000년도부터 10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한
류이섭 작가초대전 《Rebirth, 회사후소》(8.30-9.20)가 열린다. 톱밥이라는 소 류이섭에게 이배 작가와의 만남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성 있는
재를 통해 ‘자연의 근원’을 탐구하는 류이섭 작가는 버려진 것들의 재발견을 작업태도를, 독일 쾰른에서의 남춘모 작가와의 만남은 ‘지금의 청도 대산학교
통해 ‘절제와 핵심의 미감’을 연금술사처럼 표현한다. 바탕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실’에서의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긴 호흡, 명작의 조건을 자연과 가까운 단순함에서 찾기 위한 노력, 작가에게
톱밥은 ‘자연을 향한 각성’이다. 작가는 2013년 우손갤러리 개인전을 위해 대 톱밥의 가치에서 찾은 ‘본질’, 문질빈빈(文質彬彬)
구를 찾은 쿠넬리스(Jannis Kounellis, 1936-2017)를 만난 이후, 작품을 대하
는 예술가의 창작정신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액자에 갇힌 그림에서 탈 작가에게 자연은 회화 세계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이는 『논어·옹야(雍也)』
출한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의 개념과 같이, 틀에 갇힌 창작을 벗어던진 편의 "문질빈빈 연후군자(然後君子)”로 연결되는데, 문(文=형식)과 질(質=내
본질 세계로의 질문과 만난 것이다. ‘물감-미디엄’ 등과 함께 섞고 이겨서 올려 용)이 서로 잘 어우러져야 비로소 ‘군자의 경지=최상의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진 캔버스 위에서 톱밥은 또 다른 유기체가 되어 우리 앞에 자리한다. 고도로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바탕=톱밥의 깨달음’을 발견하기 위해 20여 년의 시
집중한 작가의 신체 행위를 통해 흔적과 마띠에르, 자연의 변화 자체를 온전 간을 고민하고, 바탕이 마련된 연후에 ‘색(色)과 형(形)의 확장’을 시작했다. 내
히 품은 다양한 레이어의 색채미감을 새로운 감각의 회화로 창출하는 것이다. 용과 형식의 균형에 대해 작가는 “이론을 갖다 데는 그림이 아니라 쉽게 내가
담기는 그림, 그냥 봤을 때 자연처럼 단순함이 묻어나는 그림이 보는 이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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