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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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긴 것을 14절에서는 ‘구속’
            (redemption), 즉 사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죄 사
            함’이라 해석하는데, 그것은 칭의의 부정적 표현입니다. 이렇게 사탄의 나라에서 건짐을
            받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와 이제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것,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사
            는 것이 칭의입니다. 곧 칭의론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인간론적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전
            우주적으로는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해 사탄을 무찔러 가는데, 그것이 우리 개인에게는
            사탄의 통치에서 건짐 받아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회복됨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다는 묵시적 사건을 죄 용서에 포커스를 맞춰 선포합니다.
            사탄을 섬겼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음,
            그것이 칭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칭의론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인 것을 더 확실히 알게 됩니다.




                5)      바울이 반영하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의 복음에 대해 ‘사탄의 나라를 꺾고 온 우주적 구원(샬롬)
            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묵시적 틀을 견지하면서도, 그것의 인간론적 의미(즉, 그것이 인간
            에게 가져오는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칭의론이나 입양론 등으로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것
            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 ‘사탄의 나라를 꺾고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묵시적 틀을 가지고 선포하면서도, 그것의 인간론적 의미, 즉 죄 용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됨,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게 됨에 초점을 맞춘 것과 똑같습니
            다. 다시 한 번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앞서 우리는 불트만, 융엘 등 여러 학자들이 바울의 칭의의 복음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상응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바울이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무관심
            했다고 주장함을 보았습니다. 이런 주장은 바울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알
            지도 못하면서 놀랍게 그것과 똑같은 복음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기적’
            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바울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그의 서신들 여러
            곳들에서 반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라는 말 자체를 여덟
            번 사용합니다(롬 14:17; 고전 4:20; 6:9, 10; 15:50; 갈 5:21; 골 4:11; 살전 2:11~12; 살후
            1:5). 거기에 두 번에 걸쳐 나오는 ‘하나님 아들의 나라’라는 표현까지(고전 15:24; 골 1:13)
            포함하면 총 열 번 사용한 셈입니다. 이 현상을 두고 불트만의 영향을 받아 바울의 예수 전
            승에 대한 지식이나 의존을 최소화하려는 학자들은 바울이 예수의 열쇠 언어인 ‘하나님 나
            라’를 “여덟 번밖에 안 썼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정확히 표현하려면 “여덟 번 또는 열 번이나 썼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
            님 나라’는 구약에도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데다 유대교 문서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는 사
            실을 기억하면,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대단히 많이 쓴 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뒤에 지적하겠지만 바울이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와 관계하여 하신 가르침들(
            예를 들어, 이중 사랑의 계명, 산상수훈 말씀들)과 그의 행태(죄인들을 용서하고 잔치를 나
            눔)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들에 ‘하나님 나라’와 ‘그 사람
            의 아들(인자)’의 언어들은 서로 떨어져 나오지만, 그들은 상응하는 개념들입니다. 그러므
            로 바울이 예수의 ‘그 사람의 아들(인자)’에 대한 말씀들을 자주 반영하고 있다(참조. 살전
            1:10; 3:13; 4:15~16; 5:3; 고전 9:19~23; 10:33; 갈 2:20 등)는 사실도 바울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견해를 뒷받침합니다. 이렇게 바울이 예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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