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월간사진 2018년 8월호 Monthly Photography Au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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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살덩이가 의미하는 것
제니 사빌(Jenny Saville)의 캔버스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
성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다. 거대한 살덩
어리가 화면 가득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육중한 비만 여성
의 그것도 적나라한 누드를 그리는 제니 사빌의 의도는 과
연 무엇일까. 진 로버트슨, 크레이그 맥다니엘의 <테마 현
대미술 노트>를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규범적 시각에 저항
하는 미술은 크기와 모양이 갖가지인 여러 유형의 몸을 보
여준다. 그리고 완전함이나 아름다움, 건강미 같은 용어가
거대한 비만의 몸을 캔버스 가득 들어차게 표현한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그것을 규정하는지에 대해 질문 제니 사빌의 작품. Jenny Saville, Propped, 1992
한다.’고 언급한다. 제니 사빌이 그린 비만 여성의 누드 역
시 이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전적인 미를 지
닌 여성, 전형적인 서양 누드화를 거부하고 그 규범적 시각
에 도전한다. 그녀의 화폭에 앉아 있는 여성의 나른한 눈빛 그로테스크한 몸의 의도
이 도발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작가들은 몸의 미적인 환상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그로테
스크한 몸을 시각적으로 재현해서 당혹감이나 불쾌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돌연변이와 같은 괴물적인 형상, 조각조각 분리된
신체, 흘러내리는 피나 체액, 그리고 인체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자극적인 이미지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해석의 여지는
많겠지만, 이러한 시도에는 명확한 의도가 들어있음이 분명하
다. <몸의 정치학> 전시를 기획했던 헬레인 포스너(Helaine
Posner)는 “20세기 후반 미술에서 몸의 절단은 우연이 아니
다. 그것은 폭력과 억압, 사회적 불의, 신체적 심리적 스트레스
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사는 결과물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과거
세대가 지녔던 미의 완전함 같은 확고한 이상을 갈망할지도 모
른다. 하지만 현실의 경험은 우리에게 이런 세계관이 이미 끝났
다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그로테스크한 몸
육중한 몸이 언뜻 바위처럼 보이는 로라 아귈라의 자화상. Laura Aguilar, Nature Self-Portrait #2, 1996
은 불안으로 가득한 시대에 대한 저항이자 사회와 개인이 느끼
는 불안함의 표식인지도 모른다.
‘그로테스크한 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바로
자신의 몸을 당당히 카메라 앞에 드러낸 여성 사진가 로라 어린 소녀들의 몸을 기형적으로 녹여서 붙여놓은 영국의 듀오
아귈라(Laura Aguilar)의 사진 역시 파격적이다. 두텁고 늘 아티스트 채프만 형제(Jake and Dinos Chapman)다. 자세히
어진 살집만 보면 제니 사빌이 그린 여성의 이미지와 오버 보면 소녀들의 코는 남성의 성기 모양이다. 순간 불쾌한 감정이
랩된다. 그녀의 몸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 울창한 숲 등 자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해괴한 오브제를 만든 작가는 ‘예술이
연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마치 ‘인간의 몸은 아름답든 꼭 억지스럽게 아름다워야 하는가.’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
그렇지 않든 자연의 일부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 며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떠올랐다. 절단된 신체와 기이하게
다. 로라 아귈라의 사진은 전형적인 미의 개념에 도전하는 변형된 인체 형상으로 전쟁, 학살, 섹스, 죽음 등을 표현한 채프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론 자전적인 색채가 짙다. 성적소수 만 형제의 작품들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나치
자이자 청각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 인간 살상을 주제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끔찍한 면을 다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루는 것이 세상의 진실한 투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이 불완
그녀를 가만히 보다 보면, 마치 지금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전한 인체를 통해 소외된 개인의 삶과 욕망, 사회에 대한 냉소
개념이 일시에 정지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와 무관심, 세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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