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PHOTODOT 2017년 9월호 VOL.46 S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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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게 되면서 내가 변했기 때문에 작업 또한 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작품이 심각하거나 부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
을 만들면서는 이전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명랑함, 유머, 구체적인 설명, 묘사
를 모두 배제시키고 이미지가 추상적으로 보여지길 원했다. 멀리서 보면 그
냥 어딘가에 존재하는 풍경인 것 같이 전체적인 그림만 제시하고 그 안에 내
가 원래 말하려는 철학이나 이야기는 숨겨버렸다. 다만 그렇게 이야기를 함
축시키면서도 각 직업을 유추할 수 있게끔 여러 장치를 심어두었는데, 작품
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의도된 바다.
작가는 작품에 모티브가 된 특정한 사람을 어떻게 이미지화 하는가?
사람을 오래 만나면 그 사람이 꼭 설명하지 않아도 유추되는 모습들이 있
다. 나는 특히 그런 이미지들이 잘 만들어지는 편이다. 갑자기 이 사람을 풍
경으로 만들겠다해서 되는 게 아니라 5년, 7년, 만나면서 보아온 면들과 유
추되는 면들이 이미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게 어느 정도 구체화
되면 작업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타인의 풍경〉 작업에서는 특정 직업을 가
진 사람을 이미지화하기 위해 대상을 관찰하는 것과 함께 직업에 대한 연구
를 병행했다. 예를 들어 〈금융인의 돌산〉의 모티브가 된 사람은 나를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었는데 그들과 함께 얘기를 하다보니 금융에 대한 궁금한 점 금융인의 돌산 The Quarries of Financiers 2017 c-print 222x 178cm
이 생겼고, 그 부분을 알기 위해 책을 찾아 읽거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연
구를 했다. 그렇게 관찰과 연구를 계속하다 보면 그림이 탁 떠오르는 순간이 를 케어해주는 동물들이 등장한다. 단 한 방울의 엑기스를 얻기 위해 나무와
있다. 그 사람을 알았다고 해서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잘 알기 위해 그 원료들, 동물까지 존재하고 있듯, 그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노력을 형상화
직업에 대한 공부를 한다. 생각보다 그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번 〈타인의 풍경〉시리즈 중에서 〈금융인의 돌산〉, 〈약사의 가까이서 작품을 보면 예상치 못했던 작은 요소들이 각각 스토리가 되어
실험나무〉 작품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는가? 튀어나오는 것 같아 재미있는 것 같다.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말을 자주
〈금융인의 돌산〉 풍경은 절대가치와 상대가치에 관한 얘기를 상징적으로 들을 것 같은데, 작가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담고 있다. 돈은 실제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 가치가 없어질 수도 있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동화스럽다’ 이런 말을 종종 듣지만 사실 그런 의도나
상대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절대가치를 갖는 재화는 무엇일까. 전 지구에서 목적은 예전부터 없었다. 상상력은 모두가 가지고 있다. 단지 떠오르는 이미
통용되는 절대가치는 금이다. 그런 돈의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금융 지를 시각적 결과물로 만들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인들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 저 사람들은 돈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그 불안증, 우울증을 조절하기 위해 애쓰면
을 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가치를 주면 돌도 돈이 될 수 있어’라는 생 서 작업이 나오는 편이다. 작품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동화스럽게 만들려고
각을 했다. 그래서 저들이 바라보는 풍경에 돌산이 있었으면, 그 돌산의 흙은 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나에
금과 비슷한 주황빛이었으면. 이런 식으로 틀을 잡아가면서 이미지를 만들 게 보여주는 작업이 된다. 실제로는 나 자신이 살려고 작업을 한다는 게 솔
고 촬영했다. 또한, 작품 속 전깃줄과 전구는 높낮이나 빛을 통해 경제지표의 직한 목적이다.
흐름을 알려주는 그래프를 상징화한 것이다. 모든 요소들이 결국 한 이야기 이미지 소스를 직접 촬영하고 해체, 재조합하는 작업과정 역시 ‘자가치유
를 하고 있다. 의 노력’ 맥락과 상통하는 것인가?
〈약사의 실험나무〉 작품 같은 경우에는 내가 어릴 때부터 몸이 자주 아팠었 원래 불안증를 가지고 있지만 지난 2년, 작업기간 동안 우울증을 심하게 앓
기 때문에 약사들과 많이 만나면서 형성된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 약사는 아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었었다. 심할 때는 교감신경이 엉켜 심장이 가만히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가면 수많은 약을 스스로 조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있는데도 200까지 뛰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태에서는 내가 내 감정
다. 작품에 등장하는 한 그루의 나무는 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연으로 표 을 제어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의사가 말하기를 그럴 때는 노가다를 하라고
현한 것이다. 나무에는 약의 원료가 될 만한 오만가지 것들이 달려있고 원료 한다. 멍을 때리면서 단순노동을 하라는 것이 처방이었다. 노가다는 사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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