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PHOTODOT 2017년 9월호 VOL.46 S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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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의 얼음기둥 The Ice Pillars of Government Officials 2017 c-print 178x297cm

                  신을 맑게 해주고 사람을 정화시켜준다. 그래서인지 나는 치료의 일환인 ‘누          작업이다.
                  끼따기’를 신성시한다. 바로 그게 디지털 매체인 컴퓨터로 작업을 하지만 하          들어보니 사람과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작업에 반영하
                  나하나 지우개로 문질러서 따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이기           는 것 같다.
                  도 하다. 또 하나, 작업에 노동의 시간을 많이 쏟는 이유는 노동을 좋아해서         그렇다. 사람들을 좋아하니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실망도 많이 하고. 내가
                  도 아니고 시간이 남아서도 아니다. 다만,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         의도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갔을 때의 슬픔은 무척 크다. 내가 집착이 많나
                  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사귈 때에도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야 그 사람을 안          보다.(웃음) 나는 사람 만나는 걸 되게 힘들어 한다. 좋아하지만 그 사람과의
                  다고 말할 수 있듯이, 어떤 실제 인물을 내가 알아가기까지 10년이 걸렸다면         관계를 이어나가려면 상대방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다. 공감
                  그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해온 사람을 작업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 사람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보니 오히려 작업을 만드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쉽다.
                  을 작업에 담아내는 과정이 한 달도 안 걸린다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래         인간관계는 아무것도 뜻대로 되는 게 없이 아슬아슬한데, 거기에 비해 그 사
                  서 어떤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쏟는 많은 노동과 시간은 만남과 사귐의 시간          람을 표현하려고 하는 내 작업은 너무나 명확해서 나는 이 과정을 즐기는 편
                  보다 훨씬 짧고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다. 혼자 작업실에 있는 시간 동안은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작업 안
                  사실 원성원의 작업에서 생생한 스토리텔링만큼이나 이면의 고된 노동               으로 데리고 와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을 간과하기 어렵다. 그러나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노동에 큰 의미를 두            작업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관계라서 서글프기도 하다. 실제로는 그렇게
                  지 않는 것인가?                                          안 되기 때문에.
                  모든 작가들이 그 정도의 노력을 들여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이전 작업들은 전시 작품 사이즈가 최대 2m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건 논할 거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작업에 들인 노동과 시간을 중요         〈타인의 풍경〉작품은 전시장에 3m의 거대한 크기로 전시했었는데 그 이
                  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2년의 작업기간 동안 단 7점의 작품을 만         유는 무엇인가?
                  들면서 그만큼 시간과 마음을 쏟았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           예전 작업들을 보면 누가 주인공이고 어떤 에피소드가 중점이 되는지 명확
                  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노동보다 더 무게를 두는 것은 상징화           하게 보이는데 반면, 이번 작업은 밋밋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냥 풍경이다.
                  된 장면을 만들기까지의 초반 작업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을 오랜 시          그러나 그 풍경 안에는 각양각색의 이야기 요소가 작게 함축돼있다. 한 번에
                  간 꾸준히 관찰하고, 계속 머릿속에 염두에 두면 언젠가 대상이 이미지로 바          파악되지 않고 조금 더 많이 들여다봐야 디테일을 볼 수 있게, 또 왜 이런 디
                  뀌는 순간이 오는데 그 이미지가 맞을까 확인하는 과정이 더욱 어려운 것 같          테일을 표현한 건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 실제 사람을 상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그 사람들에게 누가 되진           빅 사이즈 작업을 선보였다. 웹이나 카탈로그 같은 곳에 실린 작은 사이즈의
                  않을지 걱정과 염려가 너무 많다. 그것에 비하면 후반 작업은 가볍고 즐거운          이미지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실제로 전시장에서 보면 숨겨져 있던 디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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