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월간사진 2018년 12월호 Monthly Photography Dec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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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화면을 찍어도 작가 사진인가?
                           곽윤섭|한겨레 선임기자

                            육명심 작가의 책 <이산가족>이 나왔다.(열화당, 6만 원)
                  흑백사진 83점이 들어 있으며 그 중 56장이 텔레비전의
                  화면을 찍은 것이다. 출판사 보도자료에서 이 책을 ‘사진
                  집’이라고 부르고 있고 ‘육명심’이란 이름이 책 표지에
                  실려 있으나, 과연 이것이 ‘사진가 육명심의 사진집’이라
                  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짚어봐야 한다.
                  카메라로 텔레비전을 찍을 때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주
                  사선이 겹치거나 번지지 않게 하려면 셔터 속도를 너무
                  빠르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을 빼고 나면 더 이상의 기법
                  이 필요 없고, (창작적) 가치도 없다. 이 화면들은 한국방
                  송공사에서 일한 사람들, 즉 텔레비전 영상 카메라맨과
                  피디 등이 제작한 것이다. 이 화면을 카메라로 그대로 찍
                  어서 필름이나 디지털로 담는다고 해서 카메라를 든 사
                  람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시 ‘이산가족을
                                                                 故 황현산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유난히도 뜨거웠던 북한 전시 열기
                  찾습니다’를 본) 전국의 시청자들이 다 같이 본 화면을
                                                                 김주영|아리랑어린이도서관장                        박윤채|월간사진 에디터
                  개인 사진가의 몫으로 주장한다면 곤란하다.
                  이 책 끝 부분에는 저자인 육명심 작가가 쓴 ‘작가의 말’      글로만 뵙던 선생님을 직접 뵌 것은 2015년 가을이었        올 예술계 주요 화두 중 하나는 북한이었다. 기존에도 북
                  이 실렸다. 그 중에서도 맨 끝 부분이 다음과 같다. “이번     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여러       한 관련 전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내 주요 미술관
                  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사진들은 어찌 보면 텔레비전 화         가지 부탁드릴 일로 먼저 뵙자고 한 것인데 장소를 제대        과 비엔날레, 크고 작은 미술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면의 단순한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른다. 이것        로 안내하지 못해 여러 번의 전화 통화 후에 간신히, 그       열린 북한 관련 전시들은 2018년 특히 폭발적이었다.
                  이 과연 예술적 표현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에 대해서        것도 만남의 장소가 아닌 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상      정전 65주년이 된 올해, 북한과의 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는 또 무어라 답해야 할까. 예술의 역사에서 새로운 조류       황이 짜증이 나셨을 만도 한데 선생님께서는 “저를 데리        불었다. 남북정담회상, 판문점선언, 북미정상회담까지
                  의 탄생은 그 시대의 필연적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     러 여기까지 나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미소 지으         남북은 서로를 겨누고 있던 총부리를 거둬들였다. 여전
                  1980년대 당시 나의 사진적 시도는 이러한 시대적 맥락       며 말씀하셨다. 해가 진 가을 멋진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       히 남아있는 우려와 종전에 대한 기대가 뒤섞여 있긴 하
                  에서 발현되었으며, 그런 시대를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        정하게 미소 짓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만, 예술가들 역시 저마다의 관점으로 이를 관찰하고
                  물의 하나로 봐 주었으면 한다.”                    이후 선생님의 전시 <문인사기획전> 준비를 위해 약 1년       작품에 생각을 풀어냈다. 서울시립미술관 <2017 통일
                  ‘작가의 말’은 아리 그뤼에르의 ‘티브이샷(TV Shots)’을   동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과정은 업무라          테마전>을 필두로 문화역서울284에서 진행된 <개성공
                  떠오르게 한다. 아리 그뤼에르가 초기에 했던 진지한 작        기보다는 늘 위로 받고 응원 받는, 그래서 긴장하고 굳은       단>,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 안은미의 <북.한.춤> 공연
                  업 결과물 중 하나가 ‘티브이샷’으로 시트콤, 뉴스, 광고,     마음을 풀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선       등, 올 초부터 열린 전시를 포함해, 광주, 부산비엔날레
                  뮌헨 올림픽 중계 등이 방영되는 텔레비전 정지화면을          생님께는 우리의 부족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보였을까?         에서도 북한을 주목했다. 특히 북한미술품을 대거 반입
                  본인의 작업이라 하여 발표했다. 일대 논쟁거리가 되었         나이를 먹으면서 또 조직을 관리하면서 다른 사람의 실         해, ‘서정적인 사실화’라는 북한미술의 새 기류를 선보인
                  다. 이는 명백한 패러디였고 보도사진의 전통적 관습에         수를 지적하는 것보다 실수를 극복하며 잘할 수 있도록         광주비엔날레는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뿐만 아니라 북한
                  대한 급진적인 도전이란 평가를 받았다. 아리 그뤼에르         격려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아          미술 자체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진 미술계의 시각을 방
                  가 70년대 초반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BBC가 중계하는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기         증했다. 그런가 하면 사진계에서도 북한에 대한 관심은
                  뮌헨올림픽을 찍었던 것과 10년이 지난 80년대 초반 육       다리고 늘 격려해 주셨다. 이 시간을 통해 전시를 준비했       뜨거웠다. 북한의 따뜻한 일상을 포착한 임종진, 비무장
                  명심 작가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한국방송공사가 중계하          던 기획팀은 한 뼘 성장했다고 함께 자평했다. 또한 이 시      지대 경계초소의 처연한 풍경을 기록한 박종우, 남북한
                  는 정지화면의 ‘이산가족’을 찍은 것은 차원이 다르다.        대에  ‘기다림의 응원’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도 알       분단의 오작동을 시각화한 노순택 등 개인전을 통해 남
                  아리 그뤼에르는 어떤 실험이었고 도전이었다. 그런데          게 되었다.                                북의 모순된 현실부터 북한의 평범한 일상까지 다채로
                  이번에 나온 책 <이산가족>에 실린 텔레비전 정지화면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요즘. 그래서 선생       운 사진들이 전시되었다. 또 북한 풍경을 프로파간다 이
                  56장은 여의도광장에서 실제로 찍은 사진 27장과 나란        님이 더욱 그립다.                            미지처럼 촬영한 벨기에 출신 사진가 맥스 핑커스(Max
                  히 배치되어 전통적인 저널리즘이나 거리사진인 양 치                                                Pinckers)가 ‘2018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의 수
                  부되고 있다. 본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혼란에 빠트리                                               상자로 선정된 소식 역시 흥미로웠다. 남북관계의 발전
                  고 있는 것이다.                                                                   과 더불어 2019년 더욱 활발히 펼쳐질 북한 미술과 전
                                                                                              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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