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월간사진 2018년 12월호 Monthly Photography Dec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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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이후의 프레임, 대구미술관
전가경|출판사 사월의눈 대표
대구미술관 이계영 큐레이터와 사진아카이브연구소의
이경민 소장이 공동으로 기획한 <프레임 이후의 프레임:
한국현대사진운동 1988-1999>(10.23-2019.01.13,
대구미술관)은 두 가지 면에서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
는 전시였다. 하나는 형태, 다른 하나는 내용.
전자의 경우, 전시는 ‘아카이브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전
시의 방법론과 형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큰 질문
박이소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을 던진다. 지난 몇 년간 부각된 기획자의 작가주의적 전
전효경|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
시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자료의 윤곽을 분명하게 보
여줄 것인가, 혹은 자료를 번안된 버전으로 보여줄 것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박이소 회고전 <기록
가의 논쟁 사이에서 전시는 과감하게 전자를 택했다. 심 과 기억>(07.26-12.16)은 박이소의 작품과 함께 그의
지어 ‘팩트’조차도 ‘열린 해석’이라는 상투적 제스처로 생애를 기억할 수 있는 기록물을 모아 놓은 전시다. 친필
전시의 텍스트적 층위를 얼버무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 편지와 드로잉, 이메일 내용, 전시 설치를 위해 큐레이
던 과거 몇몇 전시와 달리, 이 전시는 오히려 보수적으로 터에게 보낸 도면 등이 연대기 순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보일 수 있는 학술적 꼼꼼함과 원래 자료 중심의 건조한 그의 생전에 촬영했던 인터뷰도 다수 있었다. 많은 자료
연출을 큐레토리얼 전략으로 내세웠다. 중에서 작가의 표정과 목소리, 손글씨를 직접 볼 수 있어
둘째, 모든 전시가 그렇듯 이 전시 또한 작가군에 있어선 서, 작업보다 작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아
선택과 집중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전 서 인상적이었다. 가족에게 꾹꾹 눌러쓴 친필 편지에서
시가 풀어낸 1990년대 사진 흐름과 담론에 관해서도 갑 는 자신이 작가로서의 생을 감당하겠다는 다부진 의지
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진과 디자인, 사진과 출 가 느껴졌고, 그가 큐레이터에게 쓴 편지, 동료 작가에
판이라는 다소 불분명한 경계를 건드리며, 사진의 외곽 게 했던 당부의 말에서는 그 의지가 삶이 되는 순간들이
에서 서성이며 활동하는 나에게 이 전시는 의미가 있었 진행형으로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와 더 이상 마
다. 미술, 건축 분과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1990 주앉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작가로서의 존재론적 고
년대 시각문화 연구에 사진이라는 분과를 추가해나가는 뇌를 거리감 없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여느 전시와 차별
이승애 개인전, 아마도예술공간
역동적인 첫 전시적 화술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화되는 지점이었다. 박이소의 작품과 자료는 1984년
강철|서울포토 기획자
아울러, 지역미술관으로서 대구미술관은 아카이브 전시 시작해 2004년에 멈춰 있지만 현재 미술이라는 언어를
에서 충실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상반기에 열린 한국 아 올 한해 가장 인상적으로 본 전시를 꼽으라면, 지난 9월 아 갈고 닦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존적인 질문을 던
방가르드 및 행위미술 아카이브 전시 <저항과 도전의 이 마도예술공간에서 한 달 간 열린 이승애 개인전 <달과 구 지고 있어 여전히 동시대 현장에 유효한 내용이다.
단아들>에 이어 하반기에는 <프레임 이후의 프레임>을 >(09.19-10.16, 아마도예술공간)이다. 한 장의 종이 위에
선보인 것이다. 대구미술관의 이후 행보가 기대되는 대 연필로 그리고 또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완성한 이미지의
목이다. 궤적을 영상을 통해 보여준 전시다. 연필 드로잉의 변형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다시 생성되는 과정이 출몰과 소멸,
시간의 흐름, 나아가 삶과 죽음을 연상케 한다는 점이 인
상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가요계에도 히트곡 하나로 연명
하는 가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유명한 시각예
술가라고 해도 이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승애는 아라리오 전속작가 10년, 영국 유학 4년, 그리
고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서 개인전을 열었다. 한 곳에 머
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그리고 집요하게 찾아가는 새로움
을 향한 열정과 도전, 그리고 루키의 땀냄새가 짙게 밴 진
정성, 간만에 전시장에서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