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월간사진 2018년 12월호 Monthly Photography Dec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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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희 개인전, The Reference
김맑음|독립큐레이터
인쇄 입자를 붙잡고 있는 사진 프린트와 그 사진을 붙들
고 있는 프레임조차 하나 없는 이 전시에서 이상하게 사
진 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90년대 생이 핸드폰을 소유
할 수 있었던 때가 스마트폰의 발달 시기와 맞물러 미디
어 장치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한 세대여서일까. 정재희
작가의 개인전 <Smart New World>(08.04-08.19,
The Reference)의 타이틀은 정직하고 투명하게 다가왔
다. 하지만 전시를 나서면서 무엇인가 피부에 남은 것 같
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전시장 내 공허한 플래시 앞에서는 피사체가 되기도, 여
러 SNS 스트리밍으로 웹상의 이미지가 되기도 한 필자
는 누군가 받을 것이라 예상했던 전화번호가 예상치 못
한 장소에서 울리는 것을 보며 결국 스스로의 앞에 스마 드러난 사진의 폭력성 보이스리스, 서울시립미술관
트 장치들만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데리다가 ‘(이미지들 오찬석|월간사진 에디터 천수림|서울사진축제프로그램디렉터
의) 장치가 전적으로 당신의 처분을 따르는 것은 아니’라
2018년은 음지에서 성행되어 오던 비공개 누드 촬영회 지난 6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억에 남는 전시가 열렸
고 했던 것처럼, 이 스마트한 신세계에서 대상은 나다르
가 담론으로 떠오른 해다. 지난 5월, 한 성인사이트에서 다. 바로 <보이스리스-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06.26-
가 은판에 붙잡힌 ‘유령’을 이야기했을 때와 같이 플래시
촬영회 사진들이 대거 유출되었다. 피해자 중 한 명이었 08.15)이다. 15세기부터 스멀거리기 시작한 서구 식민
나 모니터의 빛의 ‘자국’으로만 남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던 유튜버 양예원은 25분짜리 호소문 영상을 업데이트 지의 역사와 아직 끝나지 않은 ‘포스트식민주의’에 대해
붙잡아 존재해왔던 사진의 이미지가 ‘자국’만 남았을 때
했다. 그녀는 “피팅모델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스튜디오 되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인 전시였다.
이 전시는 스마트한 신세계에서 이미지를 어떻게 생각
에 방문했으나 그곳은 비공개 누드 촬영장이었고, 감금 역사적 경험과 집단적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데,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피부에 남기고 있다.
된 채 20여 명의 사진가에 둘러싸여 성추행 당하며 사진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을 찍혔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SNS를 통해 엄청난 여 었다. 영상, 설치, 회화, 사진이 어우러져서 난민, 여성, 전
론을 형성시켰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추가 쟁 피해자 등 우리 삶 속에서 억압되고 소외된 이들의 현
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스튜디오 실장은 ‘촬영 의상 실적인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순히 보여주는
등이 기술되어 있는 자필 서명 계약서’와 ‘먼저 자발적으 데 그치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의
로 촬영을 요구하는 양예원의 메신저 내용’ 등을 공개하 미가 있었다. 독립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중동 지역에 퍼
며, 오히려 자신은 유포를 막으려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져 살고 있는 쿠르드족 이야기를 담은 히와 케이(Hiwa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양예원 편에 서 있었다. 결국 실장 K)의 <위에서 본 장면View from Above>을 포함해, 탄자
은 유언장을 남긴 채 투신자살했고, 부친은 병세 악화로 니아의 키고마(Kigoma) 기차역을 배경으로 한 송상희
고고다다 큐레토리얼, 브레가 아티스트 스페이스 사망했으며, 최근 모친이 위독하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의 영상은 15세기까지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있다. 아직 실장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밝혀지지 않 탄자니아의 불편한 역사를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사랑
남선우|큐레이터
은 상황이다. 이야기로 겹쳐놓은 작품으로 특히 기억에 남는다.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면’이라는 요소가 갖는 다양한 역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사진의 폭력성을 들여다볼 수 있
할 또는 위치에 대한 고민, 그 고민에 함께한 작가들의 응
다. 촬영장에서 카메라는 곧 권력이다. 카메라를 이용하
답을 보여준 전시가 있었다. 바로 브레가 아티스트 스페
면 소총의 방아쇠 당기기만큼이나 손쉽게 피사체의 단
이스에서 열린, 고고다다 큐레토리얼 콜렉티브의 첫 번
편적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처
째 전시 <세 번 접었다 펼친 모양>(10.17-11.11)였다.
럼 이미지 유통과정에서도 폭력성이 드러날 수 있다. 카
이 전시는 점, 선, 면이라는 기하학적 개념을 실존하는 영
메라는 소총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이번 사건의 진실
역으로 불러들였을 때 생기는 낙차가 공간 안에 경쾌한
여부를 떠나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파급력과 폭력
리듬을 구성했고, 회화와 조각이 공유하는 면이라는 조
성에 대해 고찰을 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형 요소가 각각에서 변주되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 전시
는 장혜정, 최희승, 권현빈, 김인배, 노은주, 이수성, 이환
희, 황수연, 이원섭, 괄호 등 조형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
는 기획자, 작가, 그리고 그래픽과 공간 디자이너가 각자
의 언어로 풀어낸 협업이라는 이상적인 인상을 주었다.
특히 전시에 참여한 작가와 기획자, 협업자들이 이전의
전시나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함께 해 왔던 경
우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렇기에 이 전시는 긴 시간 따
로 또 같이 발전시켜 온 비슷한 고민들이 서로 약한 연결
을 주고받으며 일단의 매듭을 지은 풍경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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